삼시세끼 회사 편
퇴사하지 않고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나에게 맞는 일상의 루틴으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다. 몸과 정신은 연결되어 있다. 피곤한 몸으로 건강한 생각을 하는 건 매우 어렵다. 반면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생각을 하는 건 매우 쉽다. 컨디션이 좋으면 좋은 건 더 좋아 보이고, 안 좋은 건 그냥 그래 보인다. 직장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좋은 방패가 되어준다. 좋은 컨디션의 마법 같은 힘이다.
하지만 매일 출퇴근하고 직장에서 시달리는 회사원이 어떻게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남들이 좋다고 해서 영양제도 먹어보고 운동도 해보고 퇴근하고 부업까지 뛰어봤지만 피로회복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 역시도 그랬다. 필라테스를 일 년을 했어도 피곤한 건 피곤했다. 퇴근하고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해도 어딘가 공허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다.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 삶에 자꾸 플러스를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퇴근하고 술을 진탕 퍼마신다. 건강이 안 좋아지면 운동을 등록하고 영양제를 산다. 경제적으로 빡빡하면 부업을 늘려 자기 전까지 일을 한다. 내 얘기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이 모든 걸 해야 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럴수록 몸은 피로해지고 정신은 피폐해진다.
좋은 컨디션을 위해 인생에서 뭔가를 빼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자기 계발 시간. 사람마다 업무 스타일이 다른데, 나의 경우에는 제시간에 일을 집중해서 하는 편이다. 보통 집중력을 고도로 끌어올리기 때문에 퇴근하고 나면 녹초가 된다. 자는 데 필요한 체력과 다음 날 잘 일어날 체력을 보강하는 것이 필요했다.
일과 꿈을 위해 먹고 자는 시간 정도야 아무렇지 않게 투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점심시간이든 퇴근 시간이든 신경 쓰지 않고 일에 매진한다. 주말까지 할애에 꿈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사람들. SNS에서 말하는 갓생살이의 표본. 그들은 한때 나의 워너비였다.
30대가 되고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이젠 체력이 안 돼..." 나는 안타깝게도 그 체력이 23살에 끝났다. 워너비의 삶을 살았던 대학생 시절엔 수업, 동아리, 알바, 과외 등으로 스케줄러가 꽉 차있었다. 이번 주만 버티면... 이번 달만 버티면... 하다가 골병이 들었다. 면역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 열 시간을 자도 피곤했고 시도 때도 없이 컨디션이 안 좋았다. 온몸에 알레르기는 물론 평생 안 나던 여드름까지 났다. 내과, 피부과, 한의원까지 들락날락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우울해서 죽는 줄 알았다.
한 번 망가진 면역은 회복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괜찮아졌다가도 무너지고 또 나아졌다가도 퇴행했다. 스물여덟 살이 돼서야 시야가 또렷해졌다. 나에게 필요한 먹고사니즘이 보였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메커니즘. 그 삶을 위해 촘촘하고 과한 일정을 스케줄러에서 퇴출했다. 그 자리를 규칙적으로 먹고 자고 싸는 루틴으로 채웠다. 그렇게 나는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 밥시간을 칼 같이 지키는 낯빛 좋은 회사원이 됐다.
출근 두 시간 전에는 꼭 일어난다. 아침을 여유롭게 보내기 위해서다. 그릭요거트, 단호박계란찜, 토스트 등을 직접 만들어 먹고 커피까지 내려 마신다. 간단해도 정성스럽게 아침을 준비하는 것이 포인트다. 밥상이 주는 설렘을 실컷 즐길 수 있도록. 밥을 먹으면서 중간중간 멍도 때리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심심한 날엔 아이패드를 끄적인다. 느릿느릿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출근 시간이 된다. 엄청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닌데 컨디션은 대단하다. 이것이 나에겐 미라클 모닝이다.
자기 계발을 하는 미라클 모닝도 해봤다. 새벽에 일어나 글도 써보고 책도 읽고 해 봤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회사에서 너무 피곤했다. 몽롱한 상태로 어찌나 하품을 많이 하던지, 뒷자리 동료에게서 메신저가 왔다. "지금 열일곱 번째 하품하셨어요." 안 되겠다 싶어 게으른 모닝으로 다시 돌아왔다. 밥맛이 좋아졌다. 출근하는 발걸음도 경쾌해진다. 어쩌다 보니 포기할 수 없는 루틴이 됐다.
대부분 회사의 공식적인 점심시간은 1시간이다. 암묵적으론 1시간 10분에서 20분. 30분은 살짝 오버다. 이직을 하고 꼭 알아보는 게 암묵적인 점심시간 문화다. 일주일만 다녀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보통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는데, 3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매 점심마다 나가서 사 먹는 게 여간 부담이 아니다. 요즘은 만 원 내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게 쉽지 않다. 일주일이면 5만 원이고, 한 달이면 20만 원이다. 둘째, 사 먹는 음식은 대부분 자극적이다. 예민형 인간이라 음식이 조금만 매워도 장이 꼬인다. 진라면 순한 맛도 겨우 먹을 판이다. 이상하게 요 몇 년 사람들의 입맛은 점점 자극적여지고 이에 맞춰 식당 음식도 그렇게 변하고 있다. 이러다 외식을 못하게 되는 건 아니겠지. 마지막으로, 산책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점심 산책은 사랑이다.
도시락을 먹으면 개인 시간이 확보된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탕비실에서 까먹으면 그만이니까. 보통 20분 정도 먹고 한 시간은 산책을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회사 주변 골목길을 돌아다닌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마음 편하게 넋 놓고 언제 걸어보겠는가. 소화도 되고 졸음도 안 쏟아지고 걸음 수도 채울 수 있다. 벌써 이 생활도 5년 째다.
정시 퇴근의 이유다. "올대리는 집에 뭐 숨겨놨어? 왜 이렇게 급하게 가?"라는 팀장님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배고파서요..." 배꼽시계가 매우 정확해서 정시 퇴근을 하지 않으면 아사할 지경에 이른다. 저혈당이 좀 있는 편이라 생명의 위협도 느낀다. 손도 벌벌 떨리고 심하면 식은땀을 흘리면서 주저앉을 때도 있다. 이러니 배고프면 성격이 더러워질 수밖에.
가족과 함께 사는 올대리는 반찬 투정 없이 엄마가 주는 밥을 우걱우걱 먹는다. 점심과 저녁의 텀이 길어서 뭘 먹어도 미친 듯이 먹게 된다. 뭐, 그래도 상관없다. 걸을 거니까. 여느 직장인들처럼 퇴근하고 필라테스도 다니고 헬스장도 다녀봤지만 걷기만큼 부담스럽지 않은 게 없더라. 밥을 먹어도 움직이는데 지장이 없고 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라 마음이 편하다. 무엇보다 다음 날 아침에 아주 개운하고 가볍게 일어날 수 있다. 여기에 중독돼서 주 5회 정도 걷고 있다.
나라는 사람의 데이터를 살펴보자면, 먹고 자고 싸는 게 참 중요한 인간이다. 세 가지 항목 중 하나라도 무너지는 날이면 낯빛도 성격도 좀 이상해진다. 뇌에 모기를 물렸는지 머리는 윙윙 대고, 똥배는 한껏 부풀어 오른다. 어지럽고 무거운 몸으로 하루를 평소처럼 살아내기란 쉽지 않다. 멀쩡한 날씨에 투정을 부리고 어제 잘만 먹었던 반찬이 맛없다. "내가 이러려고 돈을 버나?" 하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마이너스를 해야 할 가장 대표적인 요소가 직장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다. <회사를 다닐 수도 떠날 수도 없을 때>의 저자는 억지로라도 회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뇌가 그렇게 생겨 먹었단다. 부정을 더 크게 그리고 더 잦게 인식한다. 이에 대한 방어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건강한 컨디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