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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대리 Sep 19. 2023

그냥 회사 다니고 싶습니다

꿈은 없고요

나는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싶은 5년 차 직장인이다. 출퇴근이 괴롭지 않으며 퇴사 욕구는 제로에 가깝다. 회사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때가 많다. 불만 가득한 볼탱이로 퇴사 주문만 외웠던 5년 전과는 딴판이다. 어떻게 하면 회사를 더 건강하게 다닐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한다.




5년 전, 어쩌다 보니 회사원이 됐다. 드라마 PD가 되고 싶어 재수까지 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건만 밤샘 근무가 기본이라는 말에 뒤도 안 돌아보고 포기했다. 이후 작가가 되고 싶어 30개의 공모전에 나가 2번 입상했고 상금 5만 원을 받았다. 300시간을 들였는데 5만 원이라니. 바로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첫 회사는 안타깝게도 미디어에서 흔히 말하는 ㅈㅗㅈ소였다. 대표가 직원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퍼붓더라. 기획팀에서 카피라이팅 능력을 인정받아 입사 2주 만에 정규직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3개월 동안 인턴을 하면서 CEO의 태도가 회사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한다는 것과 겉이 번지르르해도 직접 들어가서 일해봐야 그 실상을 알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인턴을 마무리하고 입사한 두 번째 회사는 대기업이었다. 입사 동기도 열댓 명 정도, 팀원만 무려 95명이었다. 스케일 자체가 컸다. 복지도 좋았다. 사내 신고 시스템도 갖췄고 유급 생리 휴가도 있었다. 하지만 물경력이 걱정됐다. 주도권을 갖고 업무에 임하기가 어려운 완벽한 업무 분업화 구조였다. 3년 차가 됐어도 업무에 미치는 영향력이 거의 없었다. 엄격한 체계가 다양한 업무 스킬 습득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과 대기업이어도 연봉이 낮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꽤 이름 있는 스타트업으로 과감하게 환승 이직을 했다. 스타트업에선 네 업무 내 업무가 없었다. 그동안 해왔던 일, 한 번도 안 해봤던 일, 상상 속에서나 해봤던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불처럼 쌓이는 포트폴리오와 체력이 고갈되는 속도는 도긴개긴이었다. 일에서 화끈한 불향이 나더라. 일이 많은 만큼 협업도 많았는데, 일에 맛 들인 나는 빌런들의 소굴에 빠져 불지옥까지 맛봤다. 사람이 제일 힘들다는 말을 체감했다. 일 년 사이에 삼 년은 늙은 것 같다.


백수가 됐다. 돈도 있고 시간도 있겠다 해외로 도피 여행을 가면 딱이었다. 하지만 이미 대학생 때 해봤다. 무작정 현실에서 도망친 여행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쯤은 잘 아는 30대가 됐다. 너덜거리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자 3개월의 시간과 500만 원을 투자했다. 108만 원을 들여 심리 상담과 미술 치료를 받았다. 명상 센터와 K-POP 댄스 학원도 다녔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친구네 집 아기를 봐주면서 서른 권의 책을 읽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다시 취직할 용기가 생겼다.


막 자라나는 스타트업으로 세 번째 이직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족스럽다. 유급 생리 휴가도 없고 파격적인 인센티브도 없다. 중위소득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으며 출퇴근 지하철에 2시간 30분 정도를 쓴다. 입사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쿵짝이 잘 맞는 단짝 동료는 아직 없고, 포트폴리오는 천천히 쌓이는 중이다. 파라다이스 같은 환경은 아니지만 이 회사를 다니는 나 자신만큼은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다양하다. 당장의 먹고사니즘을 위해서, 미래의 꿈을 위해서, 자아실현을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남들 다 일하는데 나만 뒤처지면 안 되니까 등등. 5년 전의 내가 회사원이 된 이유는 드라마 PD도, 작가도 될 수 없어서였다. 차선책으로 선택한 직업에서 환경과 운을 탓했다. 이 회사는 복지가 좋은데 연봉이 왜 이래? 이 회사는 일은 재밌는데 사람들이 왜 이래?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지? 언제까지 회사를 다녀야 하는 거지? 계속 옮기면 괜찮은 데가 나오려나? 회사에서 행복을 찾는 내가 바보지 뭐.


회사를 다니는 내내 불행했다. 여전히 회사원이라는 직업은 차선책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공모전을 준비했고, 계약금을 받고 출간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그동안 회사원이 아니라 작가지망생으로만 살았다. 회사원은 미래에 있을 나의 진짜 직업을 위한 돈줄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을 살지 않고 미래를 살았다. 지금의 직업에 소홀했다. 인간 관계도, 업무 스킬도 기르지 않았다. 목표를 세울 줄도 실천할 줄도 몰랐다. 그저 시키는 일만 했다. 결국 나의 마인드 때문에 불행한 회사 생활을 한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회사는 없다. 대기업이어도 스타트업이어도 장단점이 있고, 어떤 대기업이냐 어떤 스타트업이냐에 따라 장단점이 바뀔 수도 있다. 아무리 이직해도 불만과 빌런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지금 회사에서 퇴사를 하지 않고 건강하게 다닐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적용 중이다. 동료랑 싸웠다 화해도 해보고, 팀장님한테 아부도 떨어보고, 화장실 거울을 보고 예쁜 척도 해본다.


되게 별 거 아닌 방법들이 기분을 바꿨다. 하루의 기분이 바뀌니 먹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쨍쨍했다. 화장실 거울을 보고 예쁜 척만 해도 퇴사가 몇 달 미뤄진다. 몇 달 치 월급이 더 생기는 꼴이다. 이 정도면 기적 아닌가. 일 년 동안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서 꽤 효과 봤던 방법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왕 다니는 회사, 기분 좋게 다닐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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