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

먹다보니 생각하고 쓰다보니 홍보한다

by 올대리

멜론은 생각보다 귀찮은 과일이 아니다. 껍질을 벗겨내기보단 썰어내면 그만이다. 작은 과도가 아닌 큰 칼로 무심하게 서걱서걱. 동그란 멜론을 먼저 8등분하고, 단호박의 속을 파내듯 씨와 씨 주변의 엉킨 실 같은 그것을 파내주면 껍질을 도려내기가 더 쉽다. 한 번에 부드럽게 잘리지 않아도 괜찮다. 실수가 허용된단 얘기다. 간혹 여전히 멜론의 살에 껍질이 붙어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간단하게 그 부위만 칼질을 해주면 된다. 그러니까 멜론이 귀찮지 않은 이유는 ‘예쁘게’ 썰어서 ‘예쁘게’ 놓지 않아도 ‘예쁘기’ 때문이다.

돛단배 같은 모양새를 자랑하는 멜론은 왠지 모를 고급스러움을 풍긴다. 이국적인 껍질 때문인지, 지나치게 동그란 모양 때문인지, ‘사과’나 ‘수박’처럼 한문과 한글이 가미된 이름―그렇다고 한문과 한글이 고급스럽지 않다는 건 절대로 아니고―이 아니기 때문인지. 하여튼 멜론은 과일!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동시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징을 지닌다. 우아함의 정석이로구나. 제 자태를 알고나 있는 듯 저보다 더 유명세를 떨치는 싼 값의 ‘메로나’를 뒤로하고 고고하게도 존재한다. 냉장고 문을 여니 넉넉한 공간에 우두커니 서 빛을 발하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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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멜론을 대충 먹기 좋게 해체시켰다.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다가. 그래봤자 입 안에서 굴려야 하는 게 멜론이지만. 왜냐고? 한 조각의 멜론에는 세 가지의 식감과 맛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포크로 멜론을 찍는 경우, 물컹한 쪽보다는 단단한 가장자리 부분을 노려야 한다. 멜론조각이 포크로부터 도망가지 않을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물컹한 쪽은 다소 미끄럽고 한 번 찌르면 그 구멍이 힘없이 확장된다. 포크를 ‘앙’하고 물지를 못한다. 그래서 나는 그 물컹한 쪽을 가장 먼저 문다. 과즙이 입 안을 가득 메운다. 그 부분은 과일 조각이 아니라 ‘살’즈음으로 여겨진다. 야들야들한 게 곧바로 녹아버리니.

멜론의 ‘살’ 부위가 다 녹을 때쯤엔 단단한 부분과 물컹한 쪽의 중간 부분을 씹는다. 상반되는 두 특징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단단함이 시작되려는 지점과 야들함이 끝나가는 지점의 혼합. 그 접점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통일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안 된 것 같기도 한, 뛰기 위해 발돋움을 하려는 그 순간과도 같달까. 애매한 것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멜론조각을 느리게 씹다보면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다가―물컹한 쪽은 무음이다―갑자기 아삭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순식간에 식감과 맛이 달라지는 셈이다.

단단한 부분은 덜 단단한 수박껍질을 먹는 듯하다. 과즙이 거의 없어 단맛보단 무無맛에 가깝다. 참 극과 극이다. 과즙이 흐르다가 툭 하고 끊어져 버리다니. 밀당도 이런 밀당이 없다. 본인이 가진 맛을 한껏 내어주다가 금방 소진되는 꼴이라니. 이토록 매력적인 과일이 또 있을까. 요즘 나의 최애 아침식사―나는 매일 아침 과일 한 접시를 비우는 습관이 있다―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멜론을 썰었고, 맛봤고, 느꼈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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