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먹다 보니 생각하고 쓰다 보니 홍보한다

by 올대리

어렸을 적부터 누룽지를 좋아했다. 설탕이나 소금 간이 되지 않은, 오직 밥알로만 구성된 순수한 누룽지만 누룽지로 취급했다.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딱딱한 맛으로 먹는다. 시중에서 파는 누룽지는 그리 딱딱하지 않지만, 직접 만든 누룽지는 꽤나 견고한 편이다. 치아와 맞물리며 오도독오도독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가히 천둥번개와 맞먹는다. 아, 물론 누룽지를 먹고 있는 자의 귀로 들었을 때지만. 딱딱한 게 무슨 맛이냐고? 일단은 ‘불’ 맛 정도라고 해두겠다.

생쌀과 누룽지의 본질은 쌀이라는 점에서 같다. 불이 가해졌느냐 가해지지 않았느냐가 관건이다. 어떤 조리 과정도 거치지 않은 생쌀을 간식처럼 먹으라면 먹을 수 있겠는가? 좋아하는 사람이야 분명 있겠지만 나는 거부하겠다. 마트에만 가더라도 누룽지 간식은 있지만 생쌀 간식은 없다. 자고로 팔릴 가능성이 있는 것만 진열되는 법이지. 그렇다면 왜 생쌀은 간식이 될 수 없는 걸까? 생쌀은 철저히 밥이 되기 위한 놈이다. 때에 따라 뻥튀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생쌀의 목적은 밥, 그러니까 주식主食인 셈이다. 아무리 딱딱하다 한들 ‘맛’이 없다. 맛이 안 난다는 게 아니라, 뭘 잘못 먹은 것 같은 맛없는 맛이다.

고로 생쌀은 일단 밥이 될 필요가 있다. 누룽지가 잘 만들어지려면 전기밥솥보단 압력밥솥을 사용하는 게 더 낫다. 그러니 생쌀을 압력밥솥으로 가져가 보자. 아, 물론 가마솥만 한 게 없겠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가마솥을 갖고 있는 가정집은 없을 테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생쌀은 이제 밥이 되었다. 푸석푸석했던 과거 모습에 비하면 개과천선했다. 윤기가 번지르르한 게, 수분을 잔뜩 머금은 옹골찬 모양새다. 주걱으로 대충 휘젓고는 중간 부분만 퍼 먹는다. 그곳만이 주식主食으로써의 역할을 한다. 가장자리는 불과 가장 가까운 부분으로, 그 근방에 붙어있는 밥풀들은―더 이상 생쌀이 아니다―앞으로 누룽지가 될 녀석들이다. 간식이 될 참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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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는 목적 없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어떻게 보면 밥의 부산물이 아닌가. 전기밥솥이 대중화되지만 않았더라도 누룽지는 모든 가정집에서 거의 매일 탄생했을 것이다. 하여튼 누룽지를 먹는 방법은 다양한데, 압력밥솥에 뜨거운 물을 붓고 숭늉으로 먹기도 하고, 곧바로 긁어내 찬밥으로 만들기도 하며, 말랑말랑한 누룽지 혹은 조금 단단한 주식으로 먹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님, 나처럼 최대한 얇게 긁어낸 후 건조하여 씹을 수도 있고. 아마 이것이 우리가 누룽지! 하면 바로 떠오르는 누룽지의 모습일 것이다.

자연 건조된 누룽지는 드디어 딱딱해졌다. 따로 구운 것도 아닌데 어찌나 노릇노릇한지. 아까 맛봤던 생쌀의 맛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없다. 불 맛 고유의 고소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튀긴 누룽지와는 확실히 다르다. 누룽지가 튀겨지면 뭐랄까, 텅 빈 느낌? 속 빈 조롱박을 손가락으로 튕기면 텅~ 텅~ 소리가 난다. 속이 꽉 찬 호박을 손가락을 튕겨봐라. 툭, 툭, 우직한 소리가 난다. 개인적으로 씹기 불편할 정도로 알찬 느낌의 누룽지를 좋아한다. 너무 많이 먹다 보면 턱도 아프고 이도 아프지만 계속 먹게 된다. 고통을 잊게 하는 멈출 수 없는 맛이랄까. 한참을 먹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밥을 먹은 거야, 간식을 먹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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