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다보니 생각하고 쓰다보니 홍보한다
두부는 소싯적 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부는 콩 맛이 아닌 두부 맛이다. 콩밥이나 콩자반, 콩국수는 모두 콩 맛을 자랑하지 않는가. 이들의 주재료는 두부와 마찬가지로 콩이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두부 맛을 결코 느낄 수가 없다. 또한 이들을 기피하는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콩을 싫어한다. 콩을 싫어하는 이유를 물으면 그들은 잠자코 있다가 이렇게 대답한다. “콩 맛 나는 게 싫어요.”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콩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콩 맛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들은 두부는 곧잘 먹는다. 두부 맛이 날 테니까.
갓 나온 두부를 본 적이 있는가. 탱탱하면서도 몽글몽글한 두부의 흰 살갗은 내 탄성을 자아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도저히 콩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촉일 것이다. 콩은 제법 딱딱하고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이렇게나 다른 형태를 띠고 있으니 그 맛도 천지차이임에 틀림없으리라. 콩이 두부가 되었지만 두부는 두부 그 자체로 온갖 매력을 발산한다. 하마터면 두부가 콩이었던 사실을 잊어버릴 뻔했다. 과거의 모습을 잊어달라는 듯 두부는 김을 모락모락 뿜으며 숨을 쉰다. 난 가던 길을 멈추고 그저 멍하니 두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두부 한 모 주세요.”
기어이 못 참고 두부를 사고 말았다. 동전 지갑에서 꼬깃꼬깃하게 구겨진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냈다. 경건한 마음으로 소중하게 다뤄지지 않은 지폐를 열심히 폈다. 이는 곧 정성으로 도배된 두부와 맞바꿔지리라. 두부 집 사장님은 두부 전용 칼로 두부를 흠집 내기 시작했다. 아이고, 두부는 잘리면서도 귀엽구나. 큰 두부는 마침내 한 모의 조각들로 나뉘어졌다. 사장님은 능숙하게 두부가 으깨지지 않도록 신경 쓰며 나를 위한 한 모를 덜어냈다. 하나만 떨어져 나갔을 뿐인데도 모든 두부들은 살랑댔다. 파동은 다들 같이 느끼는 모양이다.
두부를 조심히 안고 집으로 걸어갔다. 검은 봉다리 속의 두부는 내 걸음걸이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래도 이 집 두부는 으스러지지 않는다. 어찌나 저들끼리의 응집력이 좋은지 속이 꽉 찼다. 흠, 두부를 어떻게 먹으면 잘 먹었단 소리를 들을까. 프라이팬에 구워먹자니 수분으로 이뤄진 두부에 기름칠을 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매운 양념에 조려먹자니 두부 고유의 맛이 사라질까 두렵다. 그렇지, 아무렴 재료의 생 맛을 느끼는 게 최고라고 할 수 있지. 너의 흰 자태와 어울리는 흰 접시 위에 가지런히 잘라 올려주지.
“잘 먹겠습니다.”
슬쩍 자른 두부를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두부를 먹을 때에는 쇠 젓가락보단 나무젓가락에 손이 간다. 이것이 맛에 영향을 미친다고는 할 수는 없겠으나 미관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는 듯하다. 따뜻한 느낌의 두부―물론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두부는 차갑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부는 ‘냉’의 느낌보단 ‘온’의 느낌이다―는 따뜻한 느낌의 나무젓가락과 훨씬 잘 어우러지니까. 두부조각을 입 안에 들어왔다. 씹을 필요가 없다. 굳이 인위적으로 세게 물을 필요도 없고. 부담 없이 오물거리기만 해도 두부는 바스러진다. 두부는 콩이 바스러진 자리에 피어난 꽃이라고 하던데, 뱃속에서 다시 콩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