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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균 Nov 08. 2020

마술 졸업

마술인의 일상

    때는 바야흐로 2016년, 지금으로부터 무려 4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 때의 나는 학교를 휴학하고 본가인 광주광역시에서 지내고 있었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나는 광주의 마술인들을 모아 마술모임을 가지려는 큰 계획을 세웠고, 다행히 몇몇의 좋은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프로마술사로 활동하거나 활동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그저 취미의 영역으로만 머물고 싶어했다. 난 그 때 처음으로 내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16년 당시 모집글. 사이타마가 인상적이다.


    우리는 일주일에 몇 번씩 만나 마술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중에는 K도 있었다. 나보다 한 살이 더 많았던 K는 겸손하고 조용하지만 재치있는 사람이었다. K는 마술을 배우고 싶어서 모임에 나온 사람이었고, 나는 누군가에게 마술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모임을 만든 사람이었다. 쿵짝이 맞았던 K와 나는 자연스럽게 무료로 마술을 알려주고, 배우는 관계가 되었다. K는 성실한 학생이었고, 나는 그의 노력에 보답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해서 그에게 마술을 가르쳤다. 


    어느 날, 나는 K에게 '왜 마술을 하느냐?'라는 질문을 했다. K는 그에 대한 답변으로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마술을 한다고 말했다. K는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친해지는 것이 힘들었던 K는 그들의 호의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마술을 선택했던 것이다. 다행히 내가 알려준 마술을 통해 K는 사람들과 가까워지는데 성공했고, 나 역시 그 말을 듣고 무척 기뻤다.



    시간이 흘러, 2017년 2월에 나는 입대했다. 그에 따라 광주 마술인들과의 연락도 뜸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전역이 가까워진 나는 휴가를 나왔고, 우연히 K와 연락이 닿게 되었다. 함께 식사를 하다가 내가 먼저 마술 이야기를 꺼냈고, K는 당시 내게 충격적인 답을 내놓았다. "난 더 이상 마술을 하지 않아."


    K의 말에 따르면, 그에게 마술은 사람과 친해지기 위한 수단의 하나였다. 내가 군대에 간 이후로도 그는 마술을 연습했고,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나중에는 사람들이 K에게 먼저 마술을 보여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아마도 K는 영화관 스태프들 사이에서 마술사라는, 누구보다 독특하고 고유한 캐릭터를 얻었을 테다.


     그러던 어느 날 K는 영화관의 다른 파트로 옮겨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마술이 아니면 친해질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용기를 내서 마술사가 아닌 K 자신으로서 새로운 사람들 앞에 섰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는 마술이 없어도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마술이 없어도 그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었고, 그 사실을 깨닫자 점점 마술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과거의 그는 마술이라는 겉옷을 둘러 자신을 포장해야 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겉옷 없이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는 당당한 사람이었다.



     마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왜 하필이면 '마술'을 배우고 싶어할까? 내 생각에 그들은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지만 자신의 성격이나 매력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마술이라는 겉옷을 둘러 치장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 또한 그랬고, 아마 유명한 프로마술사들 중 대부분 역시 같은 마음으로 마술을 시작했을 것이다.


    K 역시 마술을 필요로 했고, 그래서 마술을 배웠다. 마술을 통해 사람들과 친해지는 방법을 배운 K는 어느 순간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여주는 마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마술을 보여주는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더 이상 마술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마술을 졸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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