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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균 Nov 22. 2020

자연스럽다는 것

마술인의 생각

    동아리에서 더블리프트를 가르치는 중이었다. 더블리프트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살짝 덧붙이자면, 카드를 뒤집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기술이다. 열띤 강의가 이어지던 중, 부원 중 한 명이 사소하지만 중요한 이의를 제기했다. "그런데 누가 카드를 이렇게 뒤집나요?"


그런데 누가 카드를 이렇게 뒤집나요? 

    


    더블리프트를 할 때, 마술사는 카드뭉치 맨 위의 카드를 오른쪽으로 당긴 후 뒤집는다. 그가 이의를 제기한 부분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마술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맨 위의 카드를 뒤집어 달라고 하면, 더블리프트 때처럼 옆 방향으로 뒤집지 않고, 위 아래 방향으로 뒤집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차이를 관객이 인지하면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것이고, 마술이 들킬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는 마술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술의 핵심적인 부분을 파악했다. 마술사의 비밀스러운 손동작은 기본적으로 비마술인의 손동작을 모방해서 비밀을 숨긴 것이다. 그래서 마술사의 손동작은 개성적이기보다는 평범해야했다. 그런데 남들은 다 위 아래 방향으로 뒤집는데, 우리만 옆 방향으로 뒤집는다고? 이건 너무 '마술사스러운' 동작이었다.


    이는 '자연스러움'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마술사들 사이에서 교수(professor)라고 불렸던, 마술사 다이 버논(Dai Vernon)은 이렇게 말했다. "자연스럽게 해라(Be Natural)."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인가? '자연'의 반댓말은 '인위' 혹은 '인공'이다. 자연스러운 동작이란 인위적이지 않은 동작, 다시 말해 사람의 의도가 담겨있지 않은 동작이라고 할 수 있다. 마술사는 그러한 무의식적이고 인위적이지 않은 동작을 관찰하고 모방한다. 평범하게 카드를 섞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인위적인 목적을 숨겨놓는다. 그 목적이란 카드를 빼돌리거나 몰래 원하는 위치로 옮겨두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얼핏 마술사들의 플러리쉬(flourish, 마술사의 숙련된 손기술을 뽐내는 행위)는 모두 잘못된 것처럼 들린다. 카드를 화려하게 섞는 것은 비마술인에게 '자연스러운' 동작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마술사들이 플러리쉬를 사용하고, 비마술인 관객들 역시 그것을 보고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잠시 이야기를 돌려서, 도박판의 타짜를 보자. 이들은 사기행각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카드와 화투패를 다루는데 전문가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자신들이 뛰어난 손기술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야만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의심받지 않기 때문이다. 타짜와 마술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 부분인데, 타짜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반면, 마술사는 관객들과 다른 위치에 있다. 마술을 보여주기 위한 공연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마술사는 관객들과 다른 방식으로 카드를 다루는 것이 어느 정도 허용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까? 그것은 카지노 딜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숙련된 손놀림으로 착착 정확하게 카드를 섞고 나눈다. 카드를 섞을 때도 테이블 리플 셔플과 같이 비마술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한다. 그럼에도 고객들은 딜러의 손동작에서 어떠한 위화감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그 이유는 딜러의 손동작은 고객들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납득 가능한 동작이기 때문이다.*


    마술사는 타짜와 딜러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마술사는 타짜처럼 비밀스러운 동작을 숨겨야하지만, 어느 정도 딜러처럼 숙련된 손동작을 보여줄 수도 있다. 관객이 마술사의 동작을 보고 '저 방식은 내가 평소 사용하는 방식과 다르지만, 충분히 효율적인 동작이다.' 라고 느끼는 것과, '왜 굳이 저렇게 불편한 동작을 선택한걸까?' 라고 느끼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다시 더블 리프트 이야기로 돌아오면, 카드를 양 옆으로 뒤집는 방법은 분명 비마술인 관객들에게 익숙한 방법은 아니다. 비마술인 관객의 손동작을 100% 모방하는 동시에 비밀스러운 손기술까지 사용할 수 있다면 완벽히 자연스럽게, 말 그대로 '마법'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두가 이상적인 수준의 마술을 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연습을 통해 관객들에게 '자연스러움'을 설득시키는 것이다.




* 참고자료 : 스트롱 매직Strong Magic (다윈 오티즈, 김슬기 옮김, 루카스 퍼블리케이션)

동작의 효율성Economy of motion의 개념과 카지노 딜러의 예시 모두 스트롱 매직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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