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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균 Mar 11. 2021

커피의 마술

마술인의 일상

    나는 거의 매일 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도저히 100% 성능이 발휘되지 않는 기분이 든다. 마치 배터리가 부족한 리모컨처럼 뇌가 내린 명령을 몸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느낌. 카페인은 그런 나를 강렬하게 뒤흔든다. '번쩍'하는 스파크와 함께 정신을 차린다. 그때서야 나는 일어나서 무언가 유용한 일을 찾는다.


커피, 현대인의 물약.

     2018년 부산에서 개최한 세계 마술 올림픽(FISM) 때, 나는 독일의 유명 마술사 핏 하틀링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그 공연에는 본인의 책 [카드 픽션]*에 수록된, 오렌지 주스를 이용한 마술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마술 자체는 뛰어난 기억력을 선보이는 마술이었는데, 그 설정이 흥미로웠다. 마술사가 오렌지 주스를 마시면 주스의 당분이 기억을 담당하는 중추를 자극해서 단기 기억력이 대폭 향상된다는 설정이었다. 나는 그 마술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나라면 오렌지 주스가 아니라 커피를 썼을 거야.'


     왜냐하면 커피는 진짜로 마술에 가까운 효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움직인다. 내 자신도 깜짝 놀라곤 한다. 본래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인데도, 커피와 함께라면 전혀 두렵지 않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마술 모임은 언제나 카페에서 진행한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마술 이야기를 나누면 그만한 행복이 없다.

     설빙에서 일할 때도 커피는 필수다. 한 여름 설빙은 나머지 계절 전부를 합친 것과 맞먹는 수준으로 장사가 잘 된다. 쉴 틈을 주지 않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주문들을 보고 있자면, 조조의 대군을 홀로 막아선 장판파의 장비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 날이면 나는 비장하게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내린다. 그렇게 나는 두 번의 여름을 버텼다.

     커피는 졸음을 퇴치하고 에너지를 북돋아준다. 게다가 나의 레이더망을 훨씬 민감하게 만들어서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도 지치지 않을 수 있고, 산더미 같은 일거리도 용기 내서 대면할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한 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커피를 마신 그 순간은 기운 넘치고 즐겁고 흥분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면 나는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려야했다. 이는 커피 뿐만 아니라 핫식스나 레드불, 몬스터와 같은 에너지 드링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부작용이다. 이들이 만들어낸 에너지는 나중에 사용하기 위해 저축해둔 에너지를 지금 모조리 끌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몇 시간을 반짝 불태우고나면 남은 하루를 지독한 피로감에 시달리게 된다.


    주변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많은 사람들이 내게 커피를 마시면 안된다고 조언한다. 에너지가 폭발하는 듯한 '증상'은 내가 카페인에 민감하다는 것을 뜻하고, 나아가 몸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다. 그럼에도 내 인생에서 커피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커피가 없으면 의욕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지는 날들이 잦아지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커피를 조금씩 줄이는 것이다. 밤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 일주일에 하루 쯤은 커피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 운동을 통해 체력을 늘리는 것.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자취방에 캡슐 커피와 커피 추출 머신을 장만했을 정도다. 하지만 나는 커피를 오랫동안 즐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커피를 줄여야한다. 중단했던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저녁 공기가 따뜻해지면 학교 앞 운동장을 달려야겠다.







*Card Fiction. 핏 하틀링, 김슬기 옮김, 루카스 퍼블리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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