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인의 생각
"완전 사기꾼이네!" 마술을 하다보면 누구나 한번쯤 듣는 반응이다. 관객이 마술사를 진심으로 범죄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 아니다. 그의 머릿속을 살펴보면, 그는 먼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지금까지 쌓아온 '감정 데이터베이스'를 뒤져본다. 그러나 그는 마술을 경험한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마땅한 표현을 찾지 못한다. 결국 그나마 유사한 상황인 '속았을 때'를 기준으로 반응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물론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마술과 사기는 똑같아. 둘 다 거짓을 사실인 것처럼 속여서 이득을 챙기잖아."
오늘의 주제는 바로 마술과 사기다.
마술과 사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목적이다. 마술의 목적은 관객에게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고, 사기의 목적은 피해자에게 차이를 숨기는 것이다. 표현이 알쏭달쏭하다고? 예시를 통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마술의 목적은 관객에게 차이를 드러내는 것.
마술사가 관객에게 동전을 이용한 마술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관객에게 왼손을 펼쳐서 동전을 보여준 후, 손기술을 써서 동전을 몰래 빼돌린다. 이 때, 관객은 동전이 여전히 왼손에 있다고 믿는다. 마술사가 관객을 '속이는' 순간이다. 그는 관객으로 하여금 사실과 다른 잘못된 믿음, 즉 '동전은 왼손에 있다.' 라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이어서 마술사는 실제 현실을 드러낸다. 마법의 신호를 주고 왼손을 펼쳐서 동전이 손 안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객이 기존에 갖고 있었던 믿음, '동전은 왼손에 있다.' 라는 믿음은 '동전이 왼손에 없다.' 라는 현실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과정이 잘 이루어졌을 때 관객은 '동전이 사라졌다.' 라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현상을 경험한다.
마술사는 속임수를 통해서 실제와 다른 믿음을 만든다. 그리고 믿음과 실제의 차이를 직접 드러낸다. 마술의 주 목적인 '신기함'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기의 목적은 피해자에게 차이를 숨기는 것.
이번에는 사기꾼의 경우를 살펴보자. 영화 [Catch me if you can]에서 주인공 프랭크는 위조 수표를 들고 은행에 가서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여러 속임수를 사용한다. 바로 유명 항공사의 제복을 입고 은행을 방문하는 것이다. 은행원은 프랭크의 현란한 언변과 정교하게 만들어진 위조 수표의 외관에 깜빡 속아 그에게 현금을 건넨다.
프랭크는 속임수를 통해 은행원에게 '이 수표는 진짜 수표이며, 나는 신용할 만한 사람이다.' 라는 잘못된 믿음을 심었다. 실제로 프랭크는 조종사가 아니라 가출한 십대 청소년일 뿐이지만, 그는 결코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목적은 은행원으로 하여금 이 상황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아마도 은행원은 시간이 지나고, 그 수표가 위조된 것이며, 자신이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사기꾼이 그에게 심어둔 '이 수표는 진짜 수표다.' 라는 믿음은 그 즉시 '이 수표는 위조 수표다.' 라는 실제 현실로 대체되고, 은행원은 사기꾼에게 분노할 것이다.
마술사와 마찬가지로, 사기꾼은 속임수를 통해 실제와 다른 믿음을 만든다. 그러나 사기꾼은 믿음과 실제의 차이를 꽁꽁 감춘다. 이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사기꾼이 아닌 피해자의 몫이며,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막대한 손해를 입는다.
끝으로, 마술사와 사기꾼의 차이를 훌륭하게 요약한 문장을 소개한다.
마술사는 처음부터 스스로를 마술사라고 소개하지만,
사기꾼은 절대로 스스로를 사기꾼이라고 소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