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짧두리 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nowBoy Oct 25. 2024

무제

짧두리 글쓰기

시간이 약이란 말은 언제나 씁쓸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과 같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를 봤다. 그는 어설픈 표정을 지으며 빨대를 문 채 한동안 가만히 있는다. 멋대로 대화를 시작해놓고,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지. 나는 그에게 감상평이 그게 끝이냐고 묻는다. 그러면 그는 정신을 차린 듯 살포시 웃으며 나를 본다. 손을 휘젓고는, 아니라며.     


파도 소리가 울리는 카페, 빈티지 감성, 활짝 열린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검푸른 바다, 자글거리는 모래 해변 위의 일부 사람들. 바닷가에 살기에 느낄 수 있는 장면을 천천히 감상한다. 언제나 나는 이런 감성이 훅 들어오곤 빠진다. 단 한 순간, 1초 내외 남짓. 사라질 때의 그 허무함을 안으며 다시 정면을 보면, 그는 책을 펴고 페이지와 구절 하나를 천천히 읊고 있다.     


‘여름 소나기는 멋대로 내려 차갑게 만들고선 사라진다. 울음을 삼키지 말라며, 성장할 기회를 거머쥐라고. 그러나 사람들은 소나기가 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우산을 펴고, 그늘 밑으로 숨는다. 피한다고 벗어날 수 있을 리 없건만. 결국 불완전한 치유를 당하고는, 멋대로 성장해버리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고 그는 아메리카노를 다시 한 모금 마신다. 읽은 것을 다시금 음미하고는 말한다.    

 

사람은 언제 치유되는 것일까.     


그런 물음에 밤잠을 설쳤다고. 희미하게 웃고는 내게 묻는다. 내 생각을 알고 싶다면서. 나는 달달한 금요일의 밀크티를 한 모금 마시면서 말한다. 그건 절대, 누구도 알 수 없다고. 치유되었음은 알 수 있어도, 언제 치유될지는. 나는 잠시 손을 꼼지락거린다. 더, 무엇을, 얼마나 얘기를 해야 할까. 생각하다 그를 본다. 그는 나를 보며 내 생각의 끝맺음을 기다리는 것 같다. 다시금 밀크티를 한 모금 마신다. 창문 바깥 파도 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 만신창이인 결론을 짓는다.     


결국 사람은 스스로, 멋대로 치유하는 거야.     


그것에 시간은 의미가 없다. 사람의 도움이, 공감과 위로가 있더라도 결국 사람은 이해할 수 없으니까. 공감은 언어와 소리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이고, 받아들이는 건 결국 자신이다.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엇을 매개로 이어나갈지 생각하는 것도.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완전한 성장을 할 수 있는 거라고. 그렇지 않으면 멋대로 치유될 뿐이라고.     


그 당시의 생각과 감성과 느낌과 파도와 카페와 커피 내음과 사랑과 자아와 그의 미소가 단 한 순간에 들어오고 사라진다. 그가 차창 밖을 관망하고 있다. 나는 핸드폰을 뒤적이며 카페에서 들려오는 노래를 찾아본다. 나름 인디 노래를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으나 처음 들어보는 것이기 때문에. 한동안 핸드폰과 씨름을 하는데,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소설에서 치유는 어떻게든 찾아온다고 말하고 있어. 그거엔 동의해. 하지만, 그래도, 공감과 이해부터가 불완전할지라도, 그 또한 이해라고 생각해.     


고개를 들어 그를 보자 그가 핸드폰을 내게 내밀어 보인다. 노래를 찾았다며, 제목과 가사가 보이도록. 나는 그를 향해 웃으며 감사를 표하고는 제목을 유튜브에 검색해 기록한다. 그 뒤로 우리는 한창 이 소설의 스토리가 어떻고, 일부 문장이 어떤지, 첫사랑 등 또 다른 주제들을 열거하며 시간을 보냈다. 파도 소리는 여전히 카페 안을 메웠고, 차창 밖의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의 세계를 탐닉하는 듯하다. 다시금 찾아보았던 노래가 재생된다.     


사랑이 뭔지는 알 수 없어요. 그래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