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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Jun 26. 2020

공부 사막을 여행하는 아들과 엄마의 오해

온라인 개학 시대의 풍경

자려고 누우며 아들이 혼잣말했다.

아휴 힘들다. 공부란 사막을 건너는 건 참 힘들어.


그 말을 듣고 아내는 갑자기 나와 아들을 힐난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맨날 삶은 힘든 거고 어쩌고 하니까 애가 배워서 저런 부정적인 말을 쓰잖아... 그리고 너도, 학생이 공부는 그냥 당연히 하는 거지 뭐가 힘들다고 그래


사실 아들이 '공부란 사막'을 이야기한 배경은 이렇다. 요즘 들어 온라인 개학으로 아침마다 공부방으로 만들어놓은 베란다에 가서 혼자 노트북 켜고 공부하는 아들이 기특해서 공부하기 어떤지 물어본 적이 있다. 아들은 재미없다고 투덜거렸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나 들려줬던 터였다.


아빠도 어릴 때 공부하는 게 고단하고 힘들었어. 특히 숙제하는 오후의 뉘엿뉘엿 해지는 느낌이 너무 싫었어. 그런데 공부란 사막을 건너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 모래밖에 안 보이는 사막을 건너는 건 지루하고 재미없고 힘든 일이지. 덥고 땀도 나고 말이야.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막을 걷다가 포기해버려. 그게 공부의 왕국이 원하는 일이지.


공부의 왕국은 뭔데?


공부의 왕국에 가면 내가 알고 싶은 건 뭐든지 있으니까 아주 신이 나지. 살면서 힘든 여러 문제도 척척 풀어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도 돼주고 말이야. 그런데 그 좋은 곳에 모두가 쉽게 들어오면 사람들이 북적거려서 지혜의 샘과 책장이 엉망이 될 테지. 공부의 왕국에 있는 지혜들은 아주 부스러지기 쉬운 걸로 되어 있거든. 그래서 공부의 왕국은 사막 끝에 있어. 그런데 사막만 계속 이어진다면 모두가 포기해 버리겠지? 그래서 사막 곳곳엔 오아시스가 숨겨져 있지. 네가 여기까지 고생해서 왔다면 그 오아시스에서 즐겁게 놀 수 있게 해 준단다.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건 지루하지만, 동요를 칠 수 있게 되면 신이 나지? 수학과 국어는 재미없지만 그 사막에도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어서 네가 부루마블 놀이도 할 수 있게 되고, 전천당 책도 재밌게 읽을 수 있게 해 주지. 공부란 그런 거야. 사막이 재미없고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한 사람들은 오아시스를 발견 못할 거고, 또 공부의 왕국에도 들어갈 수 없지. 힘들 땐 오아시스에서 쉬었다가, 다시 사막을 건너면 돼.  


아들은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가 '오늘도 공부란 사막을 건너느라 힘들었다.'라고 공감해줄 걸 바라면서 나름의 뿌듯함을 담은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라니! 그 이야기를 아들이 한참을 설명하자 아내는 그제야 '그랬구나. 엄마가 오해했네.'라고 말하며 아들에게 사과했다.


나는 아내에게 공부하는 게 힘든 적 없었냐고 물었더니 '공부는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거고, 공부를 잘해서 1등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 전혀 뭐 힘들다 어쩌다 이런 생각은 전혀 안 들었단' 것이다. 맙소사. 이래서 부부는 좀 다른 사람끼리 살아야 하는가 보다.


나는 어렸을 때도 '사는 게 제법 만만치 않구나.' 생각하곤 했었다. 심지어 유치원 다닐 때도 그랬다. 당시 유치원 내 식사 장소가 좁아서 한 명이 나비처럼 손을 나풀나풀하며 한 명을 지목하면 차례로 밥을 먹는 시스템이었다. 빨리 지목을 받으면 괜찮지만 어느 날 늦게 지목받으면 외톨이가 된 느낌이 들어 울적해지곤 했었다.


아이들이라고 부정적 감정이 없을 리 없고 삶의 고난이 없을 리 없다. 다만 그걸 분명히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아내처럼 전혀 '그런 타입'이 아닌 사람도 있는 것이다. 뭐 그건 그대로 낙천적인 삶이고 타고난 천성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풀나풀 나비의 점심식사와 그 감정을 아직도 기억하는 나 같은 어린아이도 있다.


아이가 삶의 고난과 어려움을 토로하는 건 절대 나쁜 일이 아니다. 아이의 성향일 수도 있고, 주체적 존재로서 삶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어린아이의 감정은 없애야 할 옷의 얼룩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잘 들어주고 공감해서 스스로 다양한 감정이 물감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할 계기다.


다만 될 수 있으면 나도 부정적인 혼잣말을 줄여야겠다 생각하면서, 아들의 천성은 모서리를 가진 삶 앞에서도 무신경하고 담백하게 무시해버리는(?) 편인 아내 쪽을 닮았으면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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