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하다 말고 과외하러 간 이야기

몇 가지 기억들

by 뮤즈노트

살다 보면 나처럼 유순한 사람도 데모대에 휩쓸려 투쟁을 외치게 되기도 하나보다. 때는 바야흐로 대학 2학년 시절. 대학생 데모의 역사로 보자면 거의 끝물 수준이었다. 그 이후의 데모는 최루탄 사용도 금하게 되면서 흐지부지 없어졌으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당시 데모대는 시청 앞에 군집했고 여러 대학의 깃발들이 휘날리고, 역시 끝물인 백골단이 하얀 헬멧을 쓰고 우리 또래 친구들이 군청색 전경 옷을 입고 대치하는, 제법 비장미가 풍기는 본격적인 대규모 스트라이크 같은 풍광이 펼쳐졌다. 어쨌거나 처음 나가본 데모여서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은 지금도 남아있다.


첫 번째 장면. 우리는 동아리 연합회를 통해 집결지를 통보받았는데 무슨 정치 동아리 비슷한 곳에 갔더니, 한눈에 딱 봐도 데모 좀 하게 생긴 친구가 나를 보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집회를 많이 나가셨던 분 같은데 잘 부탁드립니다." 이 친구가 시비를 거는 걸까 생각하고 있는데 역시 목소리를 낮추더니 집결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첩보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리고 분필을 들더니 칠판에 시청역 X번 출구를 또박또박 썼다. 아주 비장한 표정으로 쓰는 바람에 나는 내심 '오! 스파이 영화처럼 도청이나 감청을 대비한 것이었군!'이라고 감탄했다.


학교 앞 역은 데모를 하러 가는 학생들로 미어터졌다. 내 앞에 어찌어찌 끼어버린 노년의 시민은 "데모들 하러 가는가?" 물었고, 친절한 나는 "네. 시청 앞으로 가요."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시청에 도착하자, 이번엔 서울 수도권 모든 대학생들이 다 몰렸는지 와글와글 역을 빠져나가는 데도 한참 걸렸다. 대체 이럴 거면 칠판에 장소를 쓴 건 무슨 의미였을까 혼란스러워졌다.


두 번째 장면. 학교 앞 시위 한번 나간 게 다였던 내게, 이 정도 대규모 시위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처음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아주 신기한 듯 관전하고 있었다. 하늘 위로 일명 지랄탄이라고 하는 최루탄의 일종이 올라갔다 떨어졌고 바닥에서 팽그르르 돌기 시작했다. 깃발을 든 학생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복면을 한 채 뛰어나가 연기가 푸슈슈숙 나오는 입구를 발로 마구 밟아댔다. 학생들이 막 손뼉 치고 좀 연극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전경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와'하고 물러나 도망가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최루탄의 하얀 연기가 터졌고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런데 콜록이며 뛰다 보니 외국인 관광객들이 탄 관광버스가 오도 가도 못하고 교차로에 서 있었다. 차 안의 외국인들은 아주 신기한 듯 사진을 찍다가 눈이 마주쳤다. 뭐랄까 그분도 신기해서였겠지만 나 역시 이분들은 한국형 스트라이크 관광을 무료 옵션으로 하고 계시는구나 생각했다.


세 번째 장면. 최루탄 냄새를 바로 맡으면 폐가 쪼그라들고 숨을 순간적으로 못 쉬게 된다. 게다가 숨을 쉬어도 눈물 콧물이 쏟아져 내린다. 이때 즉효가 담배 연기를 얼굴에 쐬주면 된다는 게 당시 시위 현장의 민간요법이었다. 어찌어찌 얽히다 보니 학교 구분 없이 마구잡이로 섞이게 됐는데 저 멀리 같은 과 친구와 후배들이 보였다. 그렇다곤 해도 아웃사이더였던 나는 딱히 가까이 가진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고 있는데, 내 동기인 남자 선배녀석들이 귀여운 후배 여자애들 얼굴에 유독 열심히 담배연기를 불어주고 있었다. 이 와중에 연애를 시도하다니 리비도의 힘은 강하구나 감탄하면서, 시위 현장에서 꽃피는 사랑이라니 제법 로맨틱한 이야기일 수는 있겠다 싶었다.


그 당시 동기 녀석들도 한심하지만, 따지고보면 비뚤어진 아웃사이더였던 나는 여전히 그렇게 질투를 하고 있는지도...


열심히 구호를 외치며 홀로 돌아다니다 시계를 봤다. 지금쯤 지하철을 타야 과외 아르바이트 시간에 늦지 않을 듯했다. 시위대에서 떨어져 나와 뱀이 굴로 들어가듯 스르르 지하철 통로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과외를 하러 갔다.


학생은 내 옷에 묻은 최루탄 냄새에 수업 내내 콜록거렸다. '너도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거라.'라고 속으로 되뇌며 생각했다. 어쩌면 여전히 으쌰 으쌰 하면서 귀여운 후배들에게 담배연기를 불어주는 저 친구들은 시위를 할 만큼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게 아닐까? 난 과외를 못하면 당장 학교 식당에 갈 돈이 없는데... 돈 때문에 역사적인 시위에서 중도 이탈해야 하다니... 부끄럽다기 보단 질투와 화가 났다. 역시 자본주의의 문제인가? 란 하릴없는 생각에도 잠겼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1000원짜리 버드와이저를 사서 놀이터 그네에 앉아 최루탄 냄새를 바람에 날려 보냈다. 삐걱삐걱 그네를 타며 맥주를 마셨다. 뭔가 애틋한 슬픔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장면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는 없지만 기억의 저장고 상단에 보관이 되리란 걸 알았다. 우리는 어떤 면에선 기억하기 위해서 산다. 새롭고 신기해서 오래 보존되는 기억이 세 가지나 있으니 나쁘지 않은 시위였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회사를 다니면서 겪는 괴로운 순간과 기억들은 그 당시엔 강렬하지만 지나고 보면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가치가 없는 것이다. 망명정부의 지폐를 닮은 월급 대신 최루탄 냄새가 밴 옷을 입은 채 그네를 타며 버드와이저를 마시는 경험이 필요한 때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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