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뮤즈노트 Aug 07. 2021

초등학생 아들을 위한 철학책을 쓰기로 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nonsul



자려고 누웠는데 아들이 묻는다.


"아빠, 세상은 뭘까? 나는 또 뭘까?"


이 녀석 또 무슨 엉뚱한 질문이야 싶었다. 집에서 종종 읽는 책들이 인문 철학책이다 보니 아들이 어깨너머로 보고 던진 질문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누운 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렴풋이나마 철학적 질문들을 떠올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물론 중간중간 '똥'이야기를 했지만...


그래서 요즘은 자기 전 누워서 재밌는 철학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들은 엄마의 '빨리 자라는 잔소리'를 회피하는 용도로 아빠의 철학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척하고 아빠는 이런 걸 알면 좋겠지 싶은, 부모 마음에 또 열심히 말한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이야기를 하지만 둘 다 즐거우니 그만인 것인가 싶다가도 질문을 던져보면 제법 그럴듯한 답을 한다.


"아빠 같은 일꾼들이 열심히 신발을 만들어서 시장에 가져다 팔았는데 100만 원을 벌었어. 근데 일꾼들에겐 50만 원만 주고 나머지 50만 원은 사장님이 가져가 버렸어. 그런데  50만 원도 사실은 일꾼들이 매일 더 많은 시간 일한 덕분에 번 돈이니까 일꾼들에게 돌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 게 마르크스란 사람의 생각이었어. 어떻게 생각해?"


"그런데 사장님은 공장이 어디서 생겼어?"


"사장님은 부모님에게 돈을 물려받았을 수도 있고, 친구에게 빌렸을 수도 있지. 그래서 그 돈으로 기계를 사고 공장을 지었겠지."


"사장님의 공장과 기계가 없으면 신발을 못 만들잖아?"


"그렇긴 하지만 일꾼들이 없으면 역시 신발을 만들긴 어렵겠지."


"그런데 신발 공장이 망하면 사장님은 돈을 다 잃어버리지만 일꾼들은 다른 공장에 갈 수 있어."


"오호 그렇네. 네가 말한 게 바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야. 자본주의에서는 공장을 갖고 있는 사장님의 입장을 많이 생각해. 망하면 공장과 기계를 사 온 사장님이 제일 돈을 많이 잃으니까 남는 50만 원은 사장님이 가져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 반대로 사회주의에서는 일꾼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어쨌든 최대한 비슷하게 나눠갖는 데 관심이 많지. 그러니까 남은 50만 원도 최대한 나눠 가지려 할 거야."


아들은 이해했는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 그런데 자본이 무슨 뜻이에요?"


자본이란...이라고 설명하려는 데 엄마가 "이제, 그만~"한다. 자는 시간을 늦추려 질문을 던지던 아들도, 혹시 우리 아들이 철학자가 되려나 기대가 부풀었던 아빠도 이내 군말 없이 잠을 청한다. 모든 철학을 이기는 게 있다면 엄마의 근엄한 목소리일 것이다.


어쨌거나 아들과 이런저런 철학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들 또래 초등학생들을 위한 쉬운 철학책을 써보면 어떨까... 란 생각에 이르렀다.


세상은 사실 모두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인간들이 모여 산다. 그중에서 쓸모 있고 말이 되는 생각을 모아놓은 것이 바로 철학이고 인문학이다. 철학이라면 어쩐지 괄시받는 느낌이지만 내겐 이런 의미를 지닌다. 예를 들어, 파리에겐 똥이 음식이란 의미를 지닌다. 파리같이 초라한 생각과 관점을 친구로 두게 되면 똥을 맛있게 먹는 비극이 일어난다. 맙소사!


반대로 다양한 사상을 배운 아이는 위대한 철학자들의 눈으로 세계를 대할 수 있게 된다. 그때가 되면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태양을 이상하게 느끼게 되고, 사과가 바닥에 떨어지는 게 놀라운 사건임을 깨닫게 된다.


세상은 전화기, 바퀴벌레, 빨간 사과 등 고정된 사물들로 이뤄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의미장에 존재하는 의미들의 집합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 의미장 안의 구성물들은 나의 시각과 관점 하에서 개념화되어 만들어진 것들일 뿐이다. (아주 곰곰이 빨간색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 이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 이때 철학은 의미장에 더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해 줌으로써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우주를 팽창시키고 세계를 고양시킨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책을 써보자란 다짐을 한다.


"이제 그만 자~"


아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니 여기까지 써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황여새 본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