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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Nov 20. 2021

18. 게임의 끝

동하는 바위에 매달린 채 생각의 지도에 떠오른 괴물의 장단점을 파악했어요. 동하가 말했어요. "물고기라서 당연히 조금 전처럼 땅 위로 올라가서 싸우는 게 좋을 것 같아. 비판의 검을 몇 번 휘두르면 저 녀석도 버티지 못할걸?" 그런데 하나의 표정이 어두웠어요. 약간 슬퍼 보이기까지 했지요. 동하는 그런 하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어요. 그리곤 뭔가를 깨달은 듯 눈빛이 달라졌어요. 갑자기 하나가 입고 있던 외투를 달라고 했어요. 하나가 외투를 벗어주자 동하는 외투를 걸치고는 탈레스의 물항아리를 부으며 외쳤어요. "탈레스의 물항아리여, 하나를 땅으로 올려줘!" 하나는 순식간에 땅 위로 이동했어요.


"동하야! 너도 물 밖으로 나와! 위험해!" 하나가 소리쳤지만 동하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어요. 천천히 바위 위로 올라가서는 깔때기 모자를 머리에 썼어요. 그러더니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서는 깊은 생각에 잠겼어요.


귀연 깔때기를 사용하는구나! 하나야 걱정하지 마라. 동하는 아직 어리지만 이미 레벨 9의 철학자가 됐으니까 말이다. 이제 동하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자꾸나.


어느샌가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이 다가와 하나를 다정하게 위로해주셨어요. 하나는 낭떠러지 폭포 바로 앞에 괴물 물고기와 마주한 동하를 켜보기로 했어요.



동하는 귀연 깔때기를 쓴 채 생각했어요. '귀납법으로 살펴보면 미토스의 유령들은 나를 공격했으니 나빠. 그리고 미토스의 괴물 물고기도 역시 나쁘다고 할 수 있지. 그렇다면 모든 미토스는 나쁘다는 결론이 나오. 그런데 하나 미토스의 가족이. 따라서 하나는 나쁘다?'


동하는 이건 잘못된 결론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나는 비록 미토스 가족이긴 하지만 동하에게 친절했고 여러 철학자 선생님을 소개해 줬거든요. 동하는 귀연의 깔때기를 통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다시 귀납법을 해보자. 미토스의 유령이나 괴물 물고기는 나쁘다. 하지만 하나는 착하다. 그렇다면 모든 미토스가 나쁘다는 건 잘못된 판단이구나!'   

동하는 바위 위에서 몸을 일으켰어요. 그리고 괴물 물고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어요. 시력이 안좋은 괴물 물고기는 하나의 외투를 입고 있는 게 동하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았어요. 강아지처럼 친근하게 다가와서는 천천히 꼬리를 흔들었어요.


마음먹으면 비판의 검으로 한 번에 괴물 날려 버릴 수 있는 기회였어요. 동하는 천천히 품에 손을 넣었어요. 하나는 동하가 비판의 검을 꺼내 물고기를 없앨지 모른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그건 기우였어요. 동하가 꺼낸 것은 변화의 불꽃이었어요. 변화의 불꽃은 불을 밝혀주기도 하지만 이전에 반대했던 것들을 소환하는 능력도 있다는 걸 하나도 알고 있었어요.  


내가 반대했던 미토스여 모습을 드러내라!


안개가 깔리고 숲 한가운데서 서서히 미토스의 유령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곧 바위에 있던 동하를 둘러싸기 시작했어요. 미토스들이 강강술래 하듯 손을 붙잡고 원을 그리며 돌자 물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어요. 어두운 먹구름이 다가와 번개가 쳤어요. 소용돌이가 심해지며 동하를 삼킬 듯 넘실거렸어요.


"아앗! 안돼!" 하나가 소리쳤어요. 그와 동시에 거대한 소용돌이와 번개는 바위를 산산조각 내버렸어요. 동하는 그대로 까마득한 폭포 아래로 떨어졌어요.



"안돼! 동하야! 나 때문에... 나 때문에... 흑흑흑!"


하나가 울부짖었어요. 그때, 안개와 먹구름을 뚫고 실습 중인 용이 나타났어요. 용은 번개보다 빠르게 폭포를 파고들었어요. 그리고는 동하를 어깨에 태우고 공중으로 떠올랐어요.


동하는 용을 타고 그대로 미토스를 향해 날아갔어요. 하나는 화난 동하가 미토스들을 모조리 날려 버릴 거라 생각했어요. 누구도 쉽게 길들이지 못한, 로고스의 축복을 받은 실습 중인 용과 함께라면 미토스들은 버티지 못할 테니까요. 용은 커다란 입을 벌리고 미토스를 삼키려 했어요.


그때 동하가 용의 어깨를 쓰다듬었어요. 순간, 용은 미토스들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똬리를 틀어서 막아선 다음 으르렁 거릴 뿐 공격 하진 않았어요.


"미토스들이여! 당신들은 무서운 자연의 힘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신이나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나곤 하죠. 로고스와 다르기 때문에 근거 없는 믿음과 무서운 이야기로 사람들을 속였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미토스가 무조건 나쁜 것이라면 미토스의 딸 하나도 나쁜 사람일 거예요. 또 당신들이 조종하는 저 괴물도 아무나 치려 했겠죠. 하지만 괴물은 제가 하나처럼 보이자 공격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하나도 늘 친절하고 착해요. 제가 울 때마다 눈물을 닦아줬거든요."


동하는 계속해서 말했어요.


"철학은 당연한 것에 의문을 품는 것이라고 소크라테스 선생님께 배웠어요. 그래서 미토스가 정말 나쁠까? 만약 미토스가 없다면 로고스도 있을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조화로운 세상은 한가지 생각과 존재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단 거예요. 로고스도 있고 미토스도 있어야해요."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이 하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나에게 말씀하셨어요.


동하는 당연한 것을 의심하는 생각을 실천했고 습관으로 만들었어. 그리고 로고스와 미토스 어느 편에 서서 화를 내며 싸우기보다는 조화로운 균형을 고민하는 중용을 선택했다. 실습 중인 용이 동하의 명령에 따르게 된 이유도...

동하가 진정한 철학자가 되었기 때문이란다.

안개가 걷히고 먹구름이 날아갔어요.  하늘에서 강한 태양 빛이 내리쬐기 시작했어요. 미토스의 유령들은 하늘을 보고는 동하 앞에 무릎을 꿇었어요.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도 함께 빛을 향해 무릎을 꿇었어요. 하나는 처음 보는 저 빛이 진리의 빛이란 걸 깨달았어요. 그 빛은 따스하게 동하의 얼굴과 온세상을 어루만지는 듯했어요. 동하의 머리에 황금색 숫자가 떠올랐어요.


LV.10
이제 전설의 레벨에 도달하였습니다!

동하는 하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어요. 그리고 손짓했어요.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이 어서 가라는 듯 하나를 보고 눈을 찡긋 했어요. 하나는 선생님께 인사했어요. 하나의 몸이 붕 떠올랐어요. 동하는 공중에 뜬 채 서서히 다가오는 하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어요.


내 손을 꼭 잡아. 하나야!


하나는 이 세상을 쭉 둘러봤어요. 인사를 하듯 게임 세계의 모든 것들과 눈을 맞췄어요. 그리고 동하의 두 손을 꼭 잡았어요. 동하가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께 꾸벅 인사했어요. 선생님도 손을 흔들며 소리쳤어요. 


언제든 문어 휴대폰 고리를 만지면 여기 있는 선생님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단다!
잘 가렴!


동하가 큰 소리로 "네!"라고 대답했어요. 점차 밝은 빛은 두 사람을 감싸 안았어요. 동하는 하나를 마주보며 말했어요. 

하나야!
우리 같이 학교 가자!

동하가 웃었어요. 하나도 활짝 웃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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