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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Sep 05. 2022

이상한 카페를 찾는 이유

파주 출판단지 카페

우리나라 카페 매장 수가 2만 개 가까이 된다고 하는 데 정작 마음에 드는 곳은 찾기가 쉽지 않다. 마음에 든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다는 의미니 당연한 일이다. 알베르트 카뮈, 장 폴 사르트르, 헤밍웨이 등 유명 작가들도 취향에 맞는 단골 카페를 출입했고 그곳에서 글을 썼다. 창의적인 문학박사 과정 대학원생이라면 '대문호의 단골 카페 연구' 같은 학위 논문을 써도 좋지 않을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나 역시 파주에 단골 카페가 있는데, 그 주변엔 출판단지가 조성되어 큰 부지에 멋지게 디자인된 건물들이 많다. 대개의 출판사는 사무동과 함께 박물관, 미술관, 카페 등을 함께 운영한다. 이곳도 그런 곳 중 하나다. 널찍한 공간과 커다란 통창이 있고 중앙엔 야마하 피아노가 있다. 주말엔 아웃렛 방문객들로 다소 붐비지만, 평일엔 한산함 그 자체다. 따라서 고객들은 주로 작가들이나 인근 출판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대부분. 여기서 집필, 편집이나 교정, 회의나 계약도 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그런데 오래 드나들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엉뚱하게도 종업원들의 일하는 태도 때문이다.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한산한 카페와 달리 전혀 한가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손님이 한 번이라도 앉았다 일어난 자리는 소독제를 뿌리고 수건으로 열심히 닦는다. 야외 테이블도 마찬가지여서 수시로 드나들며 철제 의자와 테이블을 닦아댄다. 마치 코로나 감염률 제로 대회에 참가한 카페 같다. 화분 관리도 열심이다. 물을 주거나 화분 위치를 옮기는 건 그렇다 칠 수 있는 데, 매일 커다란 크기의 화분을 끙끙대며 바닥에 놓고 물 받침대까지 닦는다. 수시로 화장실 청소를 하고, 비치된 책 정리를 하거나 위치를 바꾼다. 손님 응대는 과하게 친절하지 않고 억지웃음을 짓지도 않지만, 말하지 않아도 에어컨이나 불을 켜준다. 한마디로 이상적인 카페 종업원의 태도 같은 것이 느껴진다.  



요즘처럼 사람 구하기도, 쓰기도 힘든 시대에 이처럼 부지런한 젊은 직원들이라니 새삼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시간도 많으니, 몇 가지 가설을 생각해보았다. 돈을 다른 곳보다 훨씬 많이 주거나 종업원 중에 가족이 있을 수 있다. 사장님이 수시로 내려와 감시하거나 종업원들의 개인적 약점을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별로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따라서 내 결론은 이곳만의 특수한 교육시스템 때문이란 가설이다.


종업원이 바뀌진 않지만, 실제로 수습직원이 한 명 들어온 적이 있다. 수습이란 명찰을 달고 며칠간 일을 배우는데 하루에 해야 할 루틴을 하나하나 정확히 설명하고 수행하도록 하는 걸 보았다. 서툴러도 딱히 혼내는 분위기는 없어 보였고, 그냥 매번 루틴을 알려주는 게 다였다. 종업원 간에도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예의를 갖춘다. 그렇게 또 한 명의 이상적인 카페 종업원이 만들어지는 걸 본 적이 있다.



MZ세대들에 대해 일이나 직업에 대한 태도가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경우가 많지만, 오래 회사를 다닌 경험에 비추어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거나 인생을 책임져준다는 환상이야 말로 인생을 좀먹는 태도에 가깝다. 그들은 자신의 헌신을 과시하고 노력만큼 보상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분노를 표출한다. 기브 앤 테이크가 깨지는 건 인생의 거대한 원리 중 하나다. 그러니 그러려니 해야 함에도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회사라는 하나의 행성밖에 없는 것처럼, 온 우주가 자신을 배신한 것처럼 방방 뛴다. 그런 사람에게 대개는 그게 진실이기도 하다.  


나란 존재는 언제나 항성이어야 하고 회사는 내 빛을 반사하는, 솔라시스템에 속한 하나의 행성으로 취급되어야 옳지 않을까? 수성과 금성에서 보면, 태양인 나는 지나치게 뜨거워 보인다. 하지만 지구에선 온화하고 아름다운 빛을 뿌리는 고마운 항성일 수 있다. 회사와 직업이란 행성에서 굳이 '넌 뜨거워서 별로야.'란 평을 듣고 좌절하는 대신, 내 존재가 뿜는 빛과 열기를 비춰낼 행성을 여럿 만드는 편이 낫다. N 잡러 유행의 이면도 아마 그런 깨달음이 숨겨진 게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오늘도 종업원들은 카페의 궤도를 열심히 돌린다. 이곳 사장님도 가끔 정원에 물을 주고 야외에 화분을 내다 놓으면서 궤도를 돈다. 나도 한동안 궤도를 따라 회전하는 힘에 붙들려 있는 게 좋아 카페를 찾게 된다. 이상한 이유지만 그게 또 이 카페를 좋아하는 내 취향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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