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초 만들기는 매우 정적인 작업이다. 밀랍을 녹여 60도까지 식히고 아로마 향을 넣는다. 심지를 꽂은 용기에 밀랍을 부은 다음 상단이 천천히 굳을 때쯤 장식하면 끝. 제 자리에 앉아 사부작사부작거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양초를 다 만들자 피곤이 몰려왔다. 하얗게 불태운 느낌.
최근에 뭔가를 위해 하얗게 불태운 기억이 있었던가? 링에 오른 내일의 죠처럼 뭔가를 불태우려면 강렬한 의욕이 필요하다. 젊은 시절 의욕은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용솟음쳤다. 그래서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바가지를 들고 가서 떠다가 마음 밭에 부으면 끝. 밀랍을 부으면 되는 양초 만들기처럼.
이젠 체력보단 오히려 의욕을 아껴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면 불씨가 꺼질까 조심조심 부싯깃에 옮겨 불을 만들어야지. 그러다 빛이 나면 좋고, 향기가 나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