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목표는 명작 소설 출간하기

소설가가 되어보자

by 뮤즈노트

새해 목표를 세웠다면 여기저기 알리는 게 좋다고 한다. 아마도 말이 갖는 힘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매년(아마도) 소설을 써왔다. 처음 쓴 소설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득 나의 지금까지의 삶, 생각을 스냅사진처럼 찍어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기 형식으로 쓰자니 길고, 시로 쓰기에는 구체성을 회득하기 어렵단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소설이란 장르를 선택했다.


그렇게 단편 소설을 썼다. 이게 소설이 될 수 있으려나 싶어서 응모한 대학문학상에서 수상작으로 뽑혔다. 친구들은 '너무 어둡지 않아?'라는 평을 전해줬다. 혹은 '전혀 너답지 않은 이야기야'라고도 했다. 대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친구들에게 보이는 걸까 싶어 의아했다. (그렇게 명랑한 대학생은 아니었을텐데요) 어쨌든 상금을 받아 일단 기뻤다. 중고 노트북을 사는 등 꽤 알차게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졸업을 앞두고는 혼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성'이란 소설을 썼다. 카프카의 '성'이 연상되는 제목이다. 주인공은 고시공부로 잔뜩 예민해진 사람인데 눈앞에 흉물스럽게 올라가는 건물과 건물주, 그리고 그가 키우는 노견의 소리에 점점 끓어오른다. 게다가 가끔 마주친 건물주는 '학생이나 나나 비슷한 처지'라는 등의 말을 해서 더욱 심기를 거스른다.


어느 날 시험에 떨어지고 잔뜩 술에 취한 주인공은 공부를 방해한 개가 떠올라 소주병을 쥔 채 건물 담을 뛰어넘는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그가 본 것은 늙어 죽어가며 숨을 헐떡이는 개와 그 개를 부둥켜안고 함께 스러져가는 건물주의 그림자였다. 둘은 마치 성에 유폐된 존재들처럼 아스라이 사라지고 있었다. 주인공은 방으로 돌아와 책을 성처럼 둘러싸고 그 안에 들어가 고개를 파묻는다.


지금 줄거리를 쓰고 나니 이 역시 어둡다. (대체 어떤 젊은 시절을 보낸 것일까?) 어쩌면 나름 정직하게 썼기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당시엔 내가 스스로 쌓아 올린 성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안전하지만 볼품없고 건물주처럼 더 높이 그럴듯하게 쌓아봤자 허무함의 벽돌을 놓는 것과 비슷하다는 심리적 아이러니를 겪곤 했다. 이 작품은 교지에서 주최한 문학상 수상작으로 뽑혔다. 나중에 우연히 만난 문학반 선배들은, '넌 문학반도 아닌데 매번 수상을 해서, 우리를 대신해 소설가가 되겠구나! 싶었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대에 부응 못하고 평범한 회사원이 돼서 어쩐지 미안했다.


이후 졸업을 하고 회사를 다니며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썼다. <야구의 기원>이라는 소설이었다. 주인공은 우연히 동대문야구장에서 파울볼을 줍게 되고, 그걸 냉동실에 넣고는 까마득히 잊고 지낸다. 한밤 중 흉흉한 꿈을 꾸는 도중에 어떤 여자의 전화를 받게 되고, 대뜸 기억에도 없는 파울볼을 돌려달라고 말한다. 그는 그제야 파울볼이 냉동실에 들어가 있음을 떠올리고 이 공이 대체 무얼 의미하는지를 추적하게 된다.


그는 이야기의 끝에, 야구란 스포츠가 여와보천의 신화처럼 오색의 돌로 구멍 난 하늘을 메워 세계를 구원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전승되어 온 것임을 깨닫는다. 야구의 기원은 사실 구원의 이야기였지만 이제 신화는 사라지고 사람들은 그 시작을 기억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고 떠난 삶의 흔적은 냉동실 속 파울볼처럼 정물로 남아 덩그러니 기념될 뿐일지 모른다.


이 작품은 당시 실업 야구단 감독을 취재하기도 하는 등 꽤 공을 들인 소설이었다. 문학동네 소설상에 투고하여 열 편정도 선정되는 예심평에 올랐지만 수상하진 못했다. 수상했으면 전업 소설가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야구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이후 대학원 석사 지도교수님께서 내 작품을 보고 나서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순수문학은 작가에게 뭔가가 있어야 하네. 자넨 묘사와 스토리에 강점이 있으니 대중 소설이 어울려."


순수문학 작가에게 있는 뭔가는 기벽이나 괴벽을 뜻하는 것일 듯하다. 세상을 완벽히 다르게 보는 시선이나 모더니즘 계열의 작가처럼 대중과는 유리되어 예술만을 지키려 하는 신념도 그에 속할 것이다. 대학시절의 나라면 '뭔가'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바쁘게 회사생활을 하는 내게 '뭔가'는 확실히 희미해졌다. 덕분에 모호한 경계에 속한 재능이 돼버렸다. 한편으론 일상에서 비교적 평범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이후엔 웹소설 시장과 작법이 궁금해져서 장르소설을 써봤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고, 쓰는 것도 즐거웠다. 성과도 있었다. 베스트리그에 오르니 출판사에서 계약을 하자며 연락이 왔다. 기본 100편을 연재해야 한다는 말에 출퇴근하며 가능할까를 생각해 봤지만 이내 포기했다. 지금은 '써볼걸!'이란 생각이 종종 든다. 웹소설 작가들의 성실성은 대단하다고 감탄할만 하다.


소설은 자기 구원을 위해 쓰는 사람이 있고, 재미를 나누기 위해 쓰는 사람, 돈을 벌기 위해 쓰는 사람 등 목적은 여럿이다. 나는 올해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를 저녁마다 식탁에 앉아 생각하고 있다.


어쩐지 재밌을 것 같다. 특히 올해의 목표가 진짜로 실현된다면 소설 출간만큼 놀라운 일이다. 연말에 '소설을 출간했습니다'란 글을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뒤엔 말만 하면 목표가 이뤄지는 놀라운 방법에 대한 글을 나눠야지. 일단 퇴근 후 식탁에 앉는 일부터 시작해야겠다.


백년동안의 고독을 다시 읽는데 세월이 흘러서인지 조금씩 그 매력을 알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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