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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Dec 13. 2017

아픈 물고기를 치료하다

아빠, 어의가 되다. feat. Good Doctor

지난 이야기를 통해 짐작하셨겠지만 어항의 물고기 가족은 이제 60마리 정도로 불어났습니다. 


지난 이야기 보기


약 한달간 무려 세번의 출산!

한번에 스무마리의 치어를 생산!

(금슬아 그만 좀 좋아라!)


대략 이렇게 되었습니다. 


먹이를 주면 달려드는 물고기들 바글 to the 바글

치어들이라고 해도 1기 치어들은 이미 엄지 손톱만하게 커버렸습니다.

게다가 아이들 많은 집안이 그렇듯이 (식탐가속의 법칙 : 식탐은 언제나 아이들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기하급수로 증가) 먹이통도 금세 바닥을 드러내기 일쑤고 물도 자주 갈아줘야 합니다. 


플래티 두마리와 새우로 아들의 관심을 돌리려던 계획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렸고 고난에 찬 육어(육아가 아님)가 시작된 것입니다. 2주에 한번 거대한 물통에 이틀간 물을 담아두어 염소를 날려보낸 뒤, 수압차를 이용해 물을 넣어주기 위해 어깨에 물통을 지고 끙끙대고 있노라면 '아... 이게 뭐하는 짓인가!'싶어 한숨이 나옵니다. 


'어항 돌보듯이 나한테도 관심을 기울여봐요~'라는 아내의 농담은 이제 농담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어항 돌보느라 진짜 세상만사 세심히 관심을 쏟을 여유가...


(미안! 오늘은 빨리 퇴근할게... 아니, 물고기 밥줄 시간이야.)


그래서 어느 때부터인지 금슬좋은 암컷과 수컷이 영 마뜩치 않아보였는데...


그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느때처럼 물고기 밥을 주고 소파에 앉아, 아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 자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항 옆을 스쳐가는데 뭔가 쌔~한 느낌이 든 것이죠. 어항에 다가가 살펴봤더니... 

맙소사! 암컷이 새우 놀이터의 작은 구멍에 끼어서 눈을 뒤집고 있고, 새우 몇마리가 어느새 달라붙어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직감적으로 아... 죽었구나 싶은 생각이들었습니다. 


재빨리 새우 놀이터를 잡고 물밖으로 끄집어냈습니다. 

그런데 암컷 플래티가 미약하게 꿈틀거리는 느낌이 전해져왔습니다. 

문제는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아주 꽉 끼어서는 잘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뒤로 살짝 밀어봤지만 움직이지 않았고

앞으로 꺼내려 조심스레 흔들어 보았지만 역시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시도끝에 간신히, 꼬리를 살짝 잡고 뒤로 빼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살기 위해 얼마나 버둥거렸던지 등지느러미와 등이 허옇게 까져버렸습니다. 

게다가 비늘은 전부 거꾸로 일어난듯 까끌거렸고, 가슴지느러미도 한쪽이 뜯긴 상태였습니다. 

다시 물에 들어간 녀석은 중심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자꾸만 머리가 하늘을 향한채 잠겨 있었고,

새우군단이 그 틈을 타 이 녀석 등에 올라타 입맛을 다시고 있었습니다. 


결정을 할 때였습니다. 


(꼭 살리고 말겠어. 이번 수술은 내가 집도한다!)


일단 다시 암컷 플래티를 건져내서 살짝 물기를 닦아내고 

상처부위에 테라마이신 안연고를 도포해줬습니다. 

상처부위의 감염을 막고 광범위한 진피층 노출로 인한 체내 삼투압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처방이었습니다. 

그리고 새우군단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급한대로 치어분리통을 설치하고 물의 순환을 주기 위해, 전에 쓰던 공기발생기를 넣어줬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얘 아무래도 죽을 것 같아'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빠 무서워. 죽는거야?'


어의(fish doctor)로서 아내와 아들을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일단 필요한 응급처치는 마쳤지만, 제일 중요한 건 살고자하는 의지겠지. 내일 상태를 지켜보자.'


그렇게 다음날이 밝았습니다. 

여전히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고 먹이 역시 입에 대지 않아 모두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아마도 퇴근할 때쯤 세상을 떠나 있지 않을까? 

마음이 갑자기 무거워졌습니다. 


그리고 퇴근하자마자 물고기의 상태를 살폈습니다. 

그런데 이럴수가! 몸은 여전히 축쳐져 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배에 하얀 솜같은 곰팡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새우 놀이터에 끼었을 때 배도 심하게 긁히면서 외상이 생겼고, 

그쪽으로 이른바 수서균병이라고 하는 기생곰팡이가 침입한 모양입니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집중 치료실을 만들고 치료해 보자!"


아들과 함께 꽃병으로 쓰던 투명유리병을 씻고 염소를 제거한 깨끗한 물을 부었습니다. 

남아있는 염소 제거를 위해 neoC라고 하는 물갈이제도 약간 투입했습니다. 

그리고 온도조절기를 어항에서 잠깐 떼어내어 물온도를 높였습니다. 

평소 25도 정도로 유지하고 있는 어항물 온도보다 높은, 28도 정도로 맞췄습니다. 

그리고 공기발생기를 달아주었습니다. 


집중치료실이 완성된 다음은 물고기 치료가 남아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내가 집도한다! 사실 물고기에 약을 발라줄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안연고 대신 살균효과가 좋은 후시딘을 아가미를 피해, 

등지느러쪽과 곰팡이가 핀 배 부위에 발라줬습니다.

그리고 집중치료실에 투입한 뒤에는 곰팡이균 살균을 위해 1회용 식염수를 각각 2시간 간격으로

물고기의 상태를 보아가며 조금씩 투여했습니다. 

 

집중치료실의 모습

녀석은 이따금씩 움직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힘겨워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금슬이 좋았던 수컷이 생각났습니다. 

수컷을 보면 힘이 나지 않을까?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의 해석이지만, 적어도 익숙한 어항의 모습을 보면 안정에 도움이 될까 싶은 생각도 들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집중치료실을 조심히 옮겨서 어항앞으로 가져갔습니다. 


놀랍게도 수초뒤에 있던 수컷 플래티가 암컷이 있는 치료실 앞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건강하게 물을 노닐던 시절, 꼭 붙어다니던 모습처럼 그 앞을 지키며 암컷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5시간 정도가 지나도록 그 앞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암컷 곁을 떠나지 않고, 주위로 몰려드는 치어들을 쫓아내며 가만히 바라보는 수컷 플래티


그리고 다시 암컷을 건져내어 어항에 넣어줬습니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게 마지막이라면 둘이 낳은 치어들을 보며 함께 수초를 누빌 시간을 주고 싶은... 

역시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의 배려였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갔습니다. 

이틀이 지났습니다. 

또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살았습니다!



일주일정도가 지난 지금, 등에 선명한 흰색 상처는 남아있지만 거의 아물었고 

배쪽의 곰팡이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비늘도 매끈하게 가라앉았고

몸 중심도 제대로 잡고 헤엄치며

전처럼 먹이를 주면 재빨리 입을 벌려 받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암컷과 수컷은 다시 꼭 붙어다니며 어항 이곳저곳을 산책하듯 돌아다닙니다. 



기쁜 마음에, 가만히 어항 앞에 앉아 물고기에게 대견하다고 말해줬습니다.

물고기도 아는 듯 저와 눈을 맞추고는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아들아. 물고기가 아빠보고 고맙다고 하는것 같지 않니? 아빠만 바라보고 있잖아..."


"아닌데? 내가 가도... 봐봐... 나를 보잖아요!" 


"그...그런가? 그런데 얘한테는 이름을 지어줘야 겠어. 특별한 물고기니까 말야."


"이름이 뭔데요?"


"니모. 니모 어때? 등위의 상처때문에 오렌지색과 흰색이 번갈아 있는것처럼 보이니까..."


"니모? 그래, 니모라고 해요."


그렇게 고난의 시간을 견딘 암컷 플래티는 이름을 얻었고

어항은 새로운 이야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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