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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Feb 17. 2019

편하게 가세요란 말 한마디

어느 밤의 택시기사

스무 살 넘은 어느 날의 나는, 급한 걸음으로 다가온 불행과 맞서고 있었다. 

밤, 이불처럼 공포가 덮쳐왔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전화를 거는 것뿐이었다. 


나를 아는 친구는 

일단 집으로 오라고

와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긴 밤, 낡은 거리를 지나 

택시를 잡았다. 


기사 옆자리에 주저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분명 현실의 가로등 불빛과 다리 너머 번쩍이는 서울의 야경이었지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어쩌지 못할 일들이 있다는 것

운명이 휘두르는 채찍에 이렇게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란 것

그리고 아무리 열심히 견디고 살아내도 

인생엔 정상참작이 없다는 것. 


生의 이치를 알아버린 이십 대의 청년이었던 나는 

슬픔과 공포에 숨이 막혔다. 


 편하게 가세요. 


누군가 아득히 먼 현실의 장소에서 말을 걸어왔다. 

택시기사였다. 


자신의 하얗게 새버린 머리만큼 희미한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내가 어쩔 새도 없이 좌석을 뒤로 눕혀줬다. 


- 편하게... 그래요. 그렇게 쉬면서 가요. 


택시는 농밀한 어둠을 헤치고 달렸다. 

가로등 빛과 밤의 어둠이 번갈아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깊게 숨을 뱉어내자

어쩐지 호흡이, 숨이 좀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목적지까지 그는 한마디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그 사람은 아는 거라고

교통사고처럼 운명이란 거대한 트럭에 상처 입은 사람이란 걸 아는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레지던트로 잠조차 제대로 못 자는 친구가 

밤새 술을 마시며 고통의 의식에 참예했듯

그날 밤, 어느 노회 한 인생은 

심플한 방식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 온 것임을. 


그 이후, 정상참작이 없는 인생을 알아버린 나는

위대한 희생이나 위로 대신 

고된 삶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린 누군가를 

숨 쉬게 하는 건 

작은 배려일 수도 있단 걸 알게 되었다. 


몇 번인가 이후로 

나와 비슷한 불행을 겪는  

인생에게 그 마음을 생각하며 

의자를 뒤로 젖혀주곤 한다. 


편하게 가요. 
그래요... 그렇게 쉬면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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