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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내리는 눈 Dec 05. 2020

[파리] 이야기는 본능이다

고흐, 모파상, 에드워드 호퍼, 그리고 나의 허수아비 이야기.

 누구라도 그러하듯 나도 고흐를 좋아한다. 프랑스에 살 때엔 고흐가 인생 마지막에 살았던 오베르 쉬아즈 (Auvers-sur-Oise)에 여러 번 갔는데 (자의 반 타의 반, 파리에 살면 생업은 따로 있어도 놀러 오는 지인들을 위해 파트타임 가이드 생활을 하게 마련이다) 그곳의 작은 고흐 기념관에서 짧은 필름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던 적이 있다.


 Look here, I try to be fairly good-humoured in general, but my life too is threatened at its very root, and my step is unsteady too... So - having arrived back here, I have set to work again - although the brush is almost falling from my fingers - and because I knew exactly what I wanted to do, I have painted three more large canvases. They are vast stretches of corn under troubled skies, and I did not have to go out of my way very much in order to try to express sadness and extreme loneliness...

- Letter from Vincent van Gogh to Theo van Gogh , 10 July 1890 


 기분을 바꿔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내 삶도 뿌리에서부터 위협받고 있으니 발걸음조차 비틀거릴 수밖에... 이곳에 돌아와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 붓이 내 손가락에서 떨어져 내릴 것만 같더라.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세 점의 큰 그림을 그렸다. 그중 하나가 혼란스러운 하늘 아래 펼쳐진 거대한 밀밭 그림이다. 극한의 외로움과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내 길에서 벗어날 필요는 없겠지.

- 1890년 7월 10일,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1]


Le champ de blé aux corbeaux (까마귀 나는 밀밭, 빈센트 반 고흐 1890)

 영화에서 이 그림과 함께 밑에 흐른 영어 자막의 'I try to be fairly good-humoured in general, but my life too is threatened at its very root'이란 부분에서 울컥했었다.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그래도 유머를 잃지 않으려는 한 사람의 노력이란 얼마나 고귀한가. 너무 힘들어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미소 짓기 위해 입꼬리 하나 끌어올리는 것이 시시포스가 영원히 바위를 산으로 굴려 올리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편지에서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바라본 오베르 쉬아즈의 밀밭은 너무도 평화로웠는데 그 평화로운 곳에서 가녀린 밀 줄기가 뿌리까지 휘청이는 모습에서 스산한 자신의 삶을 발견한 고흐가 가여워 나는 울었다. 고흐를 좋아하는 누구라도 그러하듯 내가 가여워 울었다.


 빈센트와 동생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을 읽다 보면 처음 책을 샀을 때의 바람처럼 고흐의 작품 세계와 그림의 뒷이야기에 감탄하게 되는 것 뿐만 아니라 평생 묵묵히 형을 뒷바라지한 테오의 사랑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누가 봐도 정신이 불안해 보이는 고흐의 편지글을 읽고 한심하다거나 게으르다거나 몽상가라고 비난하지 않고 단 한 줄도, 단 한 단어도 책망하는 언어를 쓰지 않은 동생 테오의 편지에서 나는 '이런 대화법도 가능하구나!' 하는 충격을 받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책망하지 않고 대화하거나, 훈계하지 않고 권고하는 일은 얼마나 힘든가. 나는 까칠한 성격 때문에 별명이 '가시'였을 정도로 독설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어떠한 부모님 잔소리에도 끄떡없이 한창 반항하는 사춘기 남동생을 오로지 혓바닥 하나로 무릎 꿇려 눈물 흘리게 만든 전적이 있다. 동생은 잊었을지 몰라도 아직도 가끔씩 그 일을 생각하면 부끄러워 이 혀를 어떻게 좀 하고 싶다. 그래도 아끼는 형제 사이니까 충고를 좀 세게 한 것뿐이라고 핑계 대고 있었는데 테오와 빈센트 사이를 보면 아끼는 사이엔 역시 말을 아껴야 했다.

 

 물론 그 책을 읽으면서 테오의 인품만이 아니라 빈센트가 어떤 예술가들에게 영향받았는지도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1888년 3월 빈센트는 모파상의 '피에르와 장'을 읽는 중에 참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평가하며 테오에게 읽어 보았냐고 묻는다. 그래서 나도 빈센트 반 고흐를 따라 모파상의 '피에르와 장'을 읽어 보았는데 웬걸, 소설보다는 그 앞에 딸린 서문이 예술이었다. 빈센트 역시 소설의 서문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는지 몇 구절을 인용했는데 "소설가에게는 소설을 통해 자연을 더 아름답고, 더 단순하며, 훨씬 큰 위안을 줄 수 있게 과장하고 창조할 자유가 있다." "재능은 오랜 인내로 생겨나고, 창의성은 강한 의지와 충실한 관찰을 통한 노력으로 생긴다."는 말 등을 편지에 담았다. 나 역시 그 서문을 읽으며 거의 모든 구절에 하이라이트를 할 정도로 감동받으며 읽었는데 특히 내게 다가온 부분은 다음과 같다.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도 여전히 글을 쓰기 위해서는 미쳤든가, 대담하든가, 자만심이 대단하든가, 혹은 얼간이기라도 해야 한다! 그토록 각양각색의 천성을 타고났으며, 그토록 다양한 재능을 타고난 대가들이 무수히 왔다 간 지금, 누구나 해보지 않은 것이면서 아직도 해볼 만한 그 무엇이 남아 있을까? 누군가 말하지 않은 것이면서 아직도 말할 만한 그 무엇이 남아 있을까? 우리 가운데 그 누가 어디엔가 비슷한 모습으로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닌 글을 한 장, 문장을 한 줄 썼다고 자랑할 수 있을까? [2]

 

 하, 이 욕심 많은 사람아. 재능 있는 사람들이 다 써 버려서 더 이상 쓸 것이 남아 있지 않다는 말까지 써 버리면 어떡해? 다른 작가들에겐 이제 한탄조차 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지 않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써야 하는 이유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작법에 대하여 모파상이 나름의 논지를 펼친 명문이 이어지지만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부분은 바로 이 염세주의적 한탄이었다. 사실, 이 서문에 이어지는 본체인 소설 '피에르와 장'은 재미는 있지만 그냥 읽으면 도대체 내가 왜 근대 프랑스의 한 부르주아 집안에서 바람 펴서 자식을 낳았다가 유산 상속이라는 행운으로 인해 바람피운 게 들킨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가 의문이 든다. 소위 막장 드라마도 유산 상속이나 혼외자 같은 주제를 다루는데 어떤 지점에서 '피에르와 장'은 모파상이 말하는 '뭔가 아름다운 것' 바로 예술이 되는 것일까? 왜 고흐는 이 소설을 참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평가했는가?


The Bootleggers by Edward Hopper (밀수꾼들, 에드워드 호퍼, 1925)

 동생 장이 부모님의 지인으로부터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게 되자 동생에 대한 질투심으로 마음이 괴로웠던 피에르는 밤 산책을 나간다. 사실 그는 자기 마음이 왜 괴로운지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하다가 밤길을 걸으며 스스로에게 "오늘 저녁 내가 왜 이러지?" 하고 긴 사유를 하다가 문득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장의 유산 때문인가?" 피에르는 방파제 끝을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 스스로의 모습을 불시에 들여다봤기에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그러니까 내가 장을 질투했던 거로군. 거참, 정말이지 그건 상당히 저열한 일인데!' 훨씬 좋아진 기분으로 밤하늘과, 녹색 혹은 적색의 빛으로 깜박이는 별들과, 다음번 밀물 때를 기다리며 닻을 내리고 있는 선박들과 달을 구경하며 방파제 맨 끝까지 산책을 하다가 어떤 사람이 거기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건 바로 자신의 동생 장이었다. 예기치 않게 만나게 된 동생에게 이제 부자가 됐으니 축하한다고 어색하지만 점잖은 대화를 나누고 피에르는 방파제를 떠나 시내로 돌아간다. '동생의 존재가 바다를 앗아가 버린 바람에 산책이 예정보다 짧아져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스위스 바젤의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에서 열린 에드워드 호퍼 전에서 그림 '밀수꾼들 (1925)'을 처음 본 순간 나는 모파상의 소설 '피에르와 장'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피에르가 자기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섰던 밤 산책길의 묘사가 이 그림과 아주 비슷한 질감으로 내 마음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1920년대 금주법으로 인해 미국에서 술을 밀매하는 일이 성행하자 평소 별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편도 아니었고 다른 예술가들처럼 술을 즐기지도 않던 에드워드 호퍼지만 드물게 정치적인 의견을 가지고 그린 것이 이 작품이라 한다. 교회와 국가에 의해 금지된 행위가 벌어지는 풍경을 캔버스 위에 담는 것 자체로 자신만의 저항을 한 '밀수꾼들' 그림에서 화가는 교회의 붉은 십자가를 닮은 굴뚝을 단 맨션을 그려 넣었지만 나에게는 이 맨션이 피에르가 살고 있던 부르주아 사회의 허깨비 같은 욕망을 위태롭게 담아 놓은 상자로 보인다. 그 앞에 서서 규제와 통념에 벗어나는 밀수 행위를 하는 배를 천박하고 저열하게 바라보는 한 그림자 같은 사내의 보이지 않는 얼굴보다 술을 마시고 싶고, 취하고 싶고, 흥청망청 한 시름 잊고 싶은 욕구를 실어 나르는 배가 더 강렬하게 이 캔버스의 주인공이 되어 아마 사내의 마음에도 파도를 일으켰으리라. 좋은 예술작품끼리는 통하는 무언가의 가치가 있는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모파상의 소설이 떠오른 것이다. 더 이상 쓸 거리가 남아 있지 않은 오늘날, 내가 쓴 한 줄의 글에서 그동안 왔다 간 수많은 대가들의 글에 담긴 어떤 정신의 한 조각이라도 떠오를 수 있을 만큼 내가 의미의 파도를 일으킬 수 있을까?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내 글을 읽는 독자도 많지 않다. 아마 지금 내가 지어내는 이야기의 가장 큰 팬은 두 살배기 우리 아들일 것이다. 잠자리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점프하고, 책 읽고, 기도하고, 아이패드 보고 이것저것 다 해도 자기 싫은 아이에게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불을 다 끄고 재우기 위해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지어냈다.


"옛날에 허수아비가 살았어요. 허수아비는 아주 멋진 모자를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바람이 슝, 하고 불어와 모자가 바닥에 떨어졌어요. '어어어 어? 내 모자 어디 갔지? 빨리 찾아봐~ 어 모자 없네? 잉잉잉' 허수아비는 울었어요. 허수아비는 울다가 생각했어요. 그러면 내 모자가 어디 갔는지 한 번 사자에게 물어봐야겠다. '사자, 내 모자 봤어?' '어흥!' '어이쿠 무서워. 아니, 사자야, 내 모자 봤냐고.' '어흥!' '도망가자!' 사자는 너무 무섭게 어흥거리기만 해서 허수아비는 도망갔어요. '그러면 이번엔 코끼리에게 물어볼까?' '코끼리야, 내 모자 봤어?' '뿌우~' '아니, 내 모자 봤냐고.' '뿌우~ 쿵쾅쿵쾅' 코끼리는 너무 장난꾸러기라서 대답을 하지 않고 뿌우 거리면서 쿵쾅쿵쾅 발길질만 했어요. '잉잉 내 모자 찾을 방법이 없나 봐. 아, 친구에게 물어볼까?' 허수아비는 친구 허수아비에게 가서 물어봤어요. '친구야, 내 모자 봤어?' '응, 여기 있어. 내가 주웠어.' '고마워, 친구야!' '와 멋지다. 머리에 모자 쓰고 거울 한 번 볼까?' 허수아비는 친구 덕에 모자를 찾고 거울을 보면서 행복했어요. 끝!"


 어이없게도 이 이야기에 대한 아이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또, 또, 또!' 하며 아이는 잠들 때까지 계속 허수아비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어린이집에서 허수아비를 배우면서 집에서 부모와 같이 허수아비 인형을 만들어 오라고 숙제를 내 준 적이 있는데 그때 허수아비의 모자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보고 제가 먼저 나에게 '모자 떨어졋셔' 하고 가리킨 적이 있었다. 두 살은 뭐든지 간에 떨어지고 망가지고 부서지고 계획대로 안 되는 것을 좋아한다. 잘 쌓아 놓은 블록을 한 번에 무너뜨리고 까르르 웃으며 좋아하고 엄마 아빠가 들고 오던 물건을 떨어트리는 걸 보고 좋아한다. 우리가 실수라고 부르는 것들이 두 살에겐 재미있는 사건이고 계획대로 안 되는 돌발이 그에겐 행운이다. 본인이 기억하는 허수아비가 모자 떨어트리고 찾는 이야기에 아는 동물인 사자와 코끼리가 나오니 일단 관심을 갖고, 바람이 부는 소리 '슝~'같은 것을 잘 모르는지라 처음 들어보는 '슝~'이 신기해서 자기도 한 번 따라 해 보고, 아침에 옷 입고 꼭 거울을 한 번 보는 습관을 가진 자기가 동일시할 수 있는 이야기의 결말이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두세 번 이야기를 반복할 때마다 사자는 무서우니 빼고 코끼리는 재미없으니 빼고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기차와 아기를 이야기에 추가해 달란다.


"옌날에~ 허슈아비 살아떠요. 바람이 슝~ 어어어어 모자 없네? 기차, 무러보까?'


 그래서 나의 허수아비 이야기는 아들의 허수아비 이야기로 변주되었다. "이번엔 기차에게 물어볼까?' 허수아비는 기차에게 가서 물어봤어요. '기차야, 내 모자 봤어?' '칙칙폭폭 땍~' '아니, 기차야, 내 모자 봤냐고.' '칙칙폭폭 땍~' 기차는 너무 바빠서 칙칙폭폭 거리며 기찻길을 달려가서 허수아비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어요. 그러면 아기에게 가서 물어볼까? '아가, 내 모자 봤어?' '응애응애' '아니 내 모자 봤냐고.' '응애응애' 아기는 너무 어려서 말을 못 하고 울기만 해서 대답을 들을 수 없었어요." 아들의 주문대로 바뀐 허수아비 이야기는 훨씬 근사했다.


 모파상의 '피에르와 장' 소설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결국, 대중은 수많은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외친다.

- 내게 위안을 주시오.

- 내게 즐거움을 주시오.

- 내게 울적함을 주시오.

- 내게 감동을 주시오.

- 내가 몽상에 잠기게 해 주시오.

- 내가 웃게 해 주시오.

- 내가 전율에 떨게 해 주시오.

- 내가 울게 해 주시오.

- 내가 생각하게 해 주시오.

 오직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 몇몇만이 예술가에게 부탁한다.

- 당신에게 가장 적합한 형식을 빌리고 당신의 기질을 살려서, 내게 뭔가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주시오.

 예술가는 그러한 시도를 감행하고 성공하거나 혹은 실패한다.


 두 살 아들은 내게 즐거움을 달라는 독자일 것이다. 그는 아직 울적함과 감동을 찾지 않지만 즐겁고 웃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열렬한 독자이다. 그러면서 그는 남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변주하고 확장하는 재주를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기차와 아기를 소재로 뭔가 아름다운 우리만의 잠자리 동화를 만들어 냈다. 재능 있는 대가들이 선점해 버려 쓸거리가 다 떨어진 현대의 무명작가는 두 살 배기에게서 이야기는 인간의 본능임을 깨닫는다. 나는 나에게 가장 적합한 형식을 빌리고 나의 기질을 살려 뭔가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남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는 수많은 인간들 중 하나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왜 써야 하는지, 무엇을 써야 하는지 잘 몰라도 쓴다. 비록 지금은 단 한 명의 열렬한 두 살배기 독자를 가졌다 해도 평생에 사는 동안 동생 테오라는 한 명의 지지자만 가졌던 빈센트 반 고흐와 같은 운명을 나눈다면 그 또한 영광 아니겠는가.




[1]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예담 출판사 (2005)

[2] <삐에르와 장>. 기 드 모빠상, 정혜용 옮김. 창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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