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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어느 날 지하철에서

2014년 11월의 기록

by 바다에 내리는 눈

한 때 나도 문학청년인 적이 있었다. 부전공인 커뮤니케이션과 병행하느라 전공인 영어영문학에 전심으로 집중했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는 없기에 이제 와 문학청년이라는 칭호를 탐내는 게 쑥스럽지만 수업 시간에 배웠던 에즈라 파운드의 아주 짧은 시를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 걸로 봐서 그때는 영문학을 사랑했던 게 맞는 것 같다.


지하철 정거장에서

- 에즈라 파운드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In a Station of the Metro

-Ezra Pound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


20-10-27-11-58-38-424_deco.jpg 자주 걷던 보그르넬 거리 Rue Beaugrebelle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 자리 잡아 문학 활동을 하던 에즈라 파운드는 파리로 이사해서 라꽁꼬드 (La Concorde) 역에서 지하철을 타다가 이 시를 쓰게 되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백수 활동을 하던 나는 파리로 이사해서 찌린내 나는 노숙자와 담배 피우는 소녀를 지나 백 년 동안 치우지 않은 듯한 터널의 공기를 머금은 메트로 안으로 들어서며 이 시를 떠올린다.


한 때 가슴 아프게 느껴졌을 법한 이 광경이 더 이상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것을 파리지앙들은 노숙인이 물건처럼 정리되어 쉼터로 강제적으로 옮겨지지 않고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의 방식대로 사는 것을 존중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허나 내 보기에 그것은 인간성의 말살이다.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구걸을 하는 집시 여인은 지하철 안 너덜너덜 뜯어진 광고판의 종이만큼이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존재이다. 일하지 않고 구걸하며 사는 그녀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 주는 사람들이 그토록 철저하게 그녀의 존재를 무시하며 열중하는 것은 핸드폰 속 게임 캔디 크러쉬 사가.


혹은 그녀의 부른 배를 보고 또 아이를 낳아 양육수당을 챙기면 겨우 먹고 살 방편은 해결되리라 믿고 싶은지도 모른다. 아직은 절대적인 자유와 사회 안전망으로서의 복지 개념이 체화되지 않은 이방인은 이 광경이 불편하다. 이렇게 외면해도 되는 걸까......


집시 여인은 이런 이방인의 망설임을 느낀다. 희망 없이 사람들을 지나던 그녀도 내 앞에서 손을 내민 채 한동안 떠나지 않고 쏟아질 것 같은 까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약자로 생각하고 동정할 뻔했던 이가 나를 이 지하철 안에서 가장 마음이 약한 사람으로 생각해서 다가온다. 나는 갑자기 내가 지갑을 꺼내는 순간 그녀의 일당이 나를 에워싸고 소매치기로 돌변하는 전형적인 파리의 소매치기 수법을 상상한다. 오늘 동전 한 닢을 주었다가는 앞으로 매일 아침 이 열차를 타는 내내 적선을 해야 할 것 같은 귀찮은 예감도 든다.


그래서 선뜻 지갑을 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녀를 무시하지도 못하는 불편한 몇 분간의 대치 끝에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그녀 손을 잡아끌고 마침내 그녀는 포기하고 떠나는 순간, 나의 인간성 말살 지수가 +1만큼 상승하는 것을 느낀다. '축하합니다, 파리지앙 수준의 무심함을 획득하셨습니다.'


나는 무엇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날 지하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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