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짜증이 늘었다. 표현하고 싶은 욕구와 감정은 다양해지는데 말이 따라주질 않아 무언가 말해 보려고 고 귀여운 입으로 오물거리다가 좌절감에 짜증을 버럭 낼 때마다 나는 그를 위로한다. 그래, 네가 바보가 아닌 것을 내가 알아. 너의 머릿속에 찬란한 생각들이 가득 찬 우주가 있다는 것을 안다. 다만 표현하지 못할 뿐 언젠가 곧 넌 맘껏 재잘댈 수 있을 거야. 그러니 기다리자.
그러나 나는 나를 그렇게 위로할 수 없다. 남의 나라의 말로는 이미 아는 것도 표현할 수가 없어 기초적인 단어와 틀린 문법으로 아무 말이나 내뱉고 나면 그것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과는 이미 멀어져 있다. 언젠가 곧 내가 맘껏 재잘댈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말이라고 형편이 다른 것도 아니다. 분명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찬란했는데 써 놓고 보면 그렇게 초라하고 상투적이다. 아니, 초라한 것은 문장이 아니라 사람인 게지. 사람이 초라하니 문장이 움츠러든 게지. 일기 같은 것을 끄적여 보다가 아무도 보지 않아도 낯 뜨거워 덮어 버린다. 잠 못 드는 밤, 제목만 알고 내용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고전의 제목을 인터넷에 쳐 본다. 거기 나무위키에 인용된 몇 줄의 문장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알 수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생각을 이미 오래전에 뛰어난 사람들이 유려하고 적확한 문장들로 다 기록해 놓았다는 것을. 구태여 내가 보태지 않아도 세상에 문장들은 넘친다는 것을.
누군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 '그래도 한국 미국 프랑스 스위스를 거쳐 살고 있는 21세기의 당신이란 사람은 한 명뿐이니 지금 당신이 여기 있음으로 인해서 가능한 문장들을 써 보지 그래요'라고 권해 주었다. 그 말에 잠시 내 안의 무언가가 반짝, 하고 타오르는 것 같더니 이내 사그라들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게 무어 대수라고...... 나보다 백 년 전에 이미 조선 최초로 구미 대륙을 여행한 여자 나혜석은 행려병자로 죽었다오.
나는 허무와 싸워 이겨 내는 법은 모르지만 허무를 고백하기로 했다. 나는 내 안의 찬란한 생각의 우주는 의심하지만 이 거대한 우주 속의 나는 홀로 꿋꿋이 존재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웅크려 굽은 어깨를 펴고 저 무심하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본다. 내 말이 오해가 아닌 이해로 받아들여질 어떤 수신처를 찾아 이 초라하고 상투적인 말들을 부쳐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