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채수근 상병을 추모하며
2023년 7월 19일 오전 9시 10분경 해병대 제1사단 포병여단 제7포병대대 소속 장병들은 상관의 명령에 따라 구명조끼도 없이 거센 물살에서 수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채수근 상병을 포함해 8명의 장병이 급류에 쓸려 내려갔고, 7명의 장병은 구조되었으나 故 채수근 상병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생존 장병은) '엄마 내가 수근이를 못 잡았다'라고 울었습니다. 사고가 있었던 날 이후 부대와 여러 차례 통화를 했지만, 외박이 안 되면 영내 면회라도 신청하려 했지만 신청도 안 됐을뿐더러 제 아들 녀석도 '수근이를 먼저 보내는 게 먼저'라며 '잘 보내주고 올게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면회를 만류했습니다.
사고 이후 아들을 처음 볼 수 있었던 건 사고부터 17일이 지난 8월 4일입니다. 간신히 중대장의 특별 외박 끝에 휴가를 나온 아들은 늘 잠꾸러기였던 제 아들은 집에 와서 하루도 편하게 잠을 못 잤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깨기도 했고 어느 날은 울면서 깨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돌아오지 못하는 채수근 상병과 그 복구작전인지 몰살작전인지 모를 곳에 투입되었던 그 대원들 모두 제 아들들입니다. 제 아들들 모두 정상으로 돌려놓으십시오.
◆ 임명현 기자, 『"심장이 뜯겨나가는 분노로 임성근 사단장 고발" 생존 장병母 절규』, 2023.09.13, MBC 보도자료
특정 사회 집단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구조, 제도, 관계 등을 분석하는 '사회역학'을 국내에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김승섭 교수는, 천안함 생존 장병의 건강과 트라우마에 대해 저술한 저서에서 말합니다.
많은 장병에게 군대는 자기 고통을 편히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모두가 고생하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데, 자신만 아프다는 말을 하기 어려우니까요. 특히 그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어려움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PTSD로 고통받는 이들의 주요한 증상은 트라우마 사건이 자꾸 떠올라 그 상황을 재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천안함에 다시 들어가 사망한 전우의 유품을 찾거나 국군수도병원에서 밤늦게까지 조사를 받고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기자회견을 해야 했던 경험이 모두 그러했습니다.
◆ 김승섭,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난다, p.63, p.61
저는 즉시 해병대 생존 장병들에게 휴가가 주어졌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가족, 지인은 영외에 있기 때문이며, 군대는 편안하게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존장병이 17일 뒤에야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이들의 목소리를 통제하고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생존 장병들이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는 쉽지 않겠지요.
트라우마 생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생존자에게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답해주고 그 고통을 비하하는 사람들에 맞서 함께 싸워주는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생존자의 몸속에서 고통의 에너지로 머물던 사건은 언어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 김승섭,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난다, p.259
저는 우리나라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국가에 내려놓았습니다. 여러 이해관계로 인해, 장병들에게 적절한 회복 환경이 보장되지 않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故 채수근 상병을 가슴 깊이 추모하며 글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