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휘슬러의 외딴 지역, 심포니

신비한 숲 속 눈 덮인 푸른 나무들이 합창하는 그곳, Symphony

by Joon 준모

휘슬러에서 가보고 싶었던 지역 중 하나는 심포니 - "Symphony Amphitheatre" - 이었어요. 휘슬러 산 뒤로 넘어가면 능선으로 둘러싸인 오목한 지역(이런 지형을 bowl이라 부르더군요)이 하나 나오는데요, 이곳은 숲 속 나무 사이로 스키를 탈 수 있는 낭만적인 트리런(tree run)과 파우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죠.


심포니의 대표 슬로프 중 하나인 Jeff's Ode to Joy. 이름이 정말 잘 어울리는 코스예요


닿을 듯 닿기 어려운 그곳

심포니 정상 안내판에서. 봉우리 이름이 Piccolo summit 이더군요

정말이지, 이곳에 도달하려면 많은 것들이 맞아떨어져야 해요. 휘슬러에서 제일 닿기 어려운 지역이라 해야 할까요? 기본적으로 지리 문제부터 부딪히죠, 지도를 펼쳐보면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관리의 손길이 닿기 어려워요. 심포니 정상까지 이동하려고 하면 최소 3번의 리프트/곤돌라를 타야 하고. 정설차량도 먼 길을 운전해 가야 하죠. 그래서인지 스키장 개장을 하면 이 지역은 항상 닫힌 채로 비싸게 굴다가(?) 제일 마지막으로 여는 지역 중 하나이더라고요.


이 지역이 개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젠 갈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웬걸 이번엔 기상 문제가 앞을 가로막더라고요. 바람에 취약한 수목한계선 위에 위치한 지역이라 눈보라가 자주 쳐서 악천후로 문을 닫는걸 종종 볼 수 있어요. 또한 산의 하단부에서 리프트를 타고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없는 관계로 다른 정상 봉우리를 지나서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이에요. 그 말인즉슨 다른 정상 봉우리의 기상이 좋지 않으면 접근이 차단된다는 뜻이죠.


그래서 운이 좋은 날,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 슬로프 오픈을 알리는 신호등이 하나하나 올라오면서 심포니를 가리키는 초록색 등은 보통 제일 늦게 불이 켜져요. 정말 반가운 초록불이죠. 하지만 폐장시간이 다가오면 제일 먼저 일찌감치 닫아버리는 곳이라 (그것도 무려 폐장 "1시간 반" 전에 미리 닫아 버립니다) 부지런히 달려가서 열심히 즐겨야 하죠.


산에 올라오면 일단 이 신호등(?)부터 유심히 보게 됩니다. 평소에 잘 안 열던 곳이 열면 재빨리 가야죠!


외진 곳이기에 볼 수 있는 것들

새들이 많이 보이는 이곳, 폴이나 손을 높이 들고 있으면 종종 새가 와서 앉더군요

처음 이곳에 도달할 수 있었던 시기는 16-17 시즌이었어요. 당시 휘슬러에 있었던 이틀을 통틀어 (날씨가 썩 좋지 못해서) 딱 두세시간 정도만 열었던 슬로프였는데, 리프트 오픈현황 전광판을 계속 체크하다가 점심 즈음 초록불이 들어온 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넘어가서 이곳에 닿게 되었네요.


무엇보다 이곳은 인적이 드물어요. 기본적으로 중상급 난이도 이상의 슬로프로만 구성되어있고, 심포니 리프트 승차장에서 스키장 하단부로 내려갈 수 있는 슬로프가 없다보니* 이 곳을 지나치는 스키어나 보더가 없어요. 그래서 다른 리프트 승강장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한산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물론 극성수기 주말엔 리프트 대기줄이 15-20분 정도로 늘어나긴 합니다.)


또한 이곳은 리프트와 슬로프를 설계할 당시 자연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했다고 하네요. 벌목을 최소화한다거나 건축재료를 운반할 때 도로가 아닌 헬기(!!)를 이용하는 등등해서 말이죠.


그래서인지 조금 더 자연친화적인 모습들을 볼 수 있어요. 사진처럼 이렇게 폴을 하늘 위로 들고 있으면 새들이 날아와서 앉기도 하는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말이에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폴을 하늘 위로 들고 있길래 무얼 하나 궁금했는데, 숲 속을 날아다니는 새들이랑 놀고 싶어서 나뭇가지를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심포니 정상으로 다시 올라가야 빌리지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음악이 흐를것만 같은 슬로프 이름들

"Symphony Amphitheatre"(교향곡 공연홀)라는 이름에서 유추하셨겠지만, 이곳은 "음악"을 테마로 한 곳이에요. 수목한계선 위의 새하얀 지역에서 출발해 듬성듬성 있는 나무들 사이로 트리런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슬로프들은 모두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이름 지어졌죠. 베토벤의 교향곡으로도 알려져 있고 환희의 노래 뜻을 가진 심포니의 제일 대표적인 슬로프 "Jeff's Ode to Joy", 슬로프 사이사이 툭툭 튀어나오는 나무들이 인상적이었던 "Staccato Glades", 소리가 울려퍼질것만 같은 넓은 보울 "Flute Bowl", 그리고 이곳들을 바라볼 수 있는 정상 봉우리의 이름은 "Piccolo Summit"이라고 하네요.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잘 지었어요. 여기저기서 찬가가 들려올것만 같은 그런 이름들이네요.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배운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는 곳이네요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슬로프들

아름다운 이름만큼이나 슬로프 하나하나가 정말 멋진 곳이에요. 무엇보다 새하얀 세상에서 내려가면서 주변 풍경이 푸르른 숲 속으로 변해가는 그 과정은 정말이지, 잘 짜인 변주곡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리프트에서 정상에서 고개를 돌려 또 다른 산봉우리*를 보면, 그곳은 마치 공연하기 좋은 노천극장 같은 오목하고 광활한 지형이 넓게 펼쳐져 있죠. 이곳은 약간의 하이킹을 통해 올라가는 곳이라 내려오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는 없지만 가끔씩 눈을 가르며 아름다운 라인을 그리며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공연을 관람하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또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다른 쪽 산봉우리 정상에서 시작하는 둘레길**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을 따라다가 보면 새하얀 알파인 지역을 지나 오른편 나무 너머 푸른 하늘과 저 멀리 블랙콤이 보이는 멋진 둘레길이 완만한 경사를 따라 펼쳐져요.

하지만 무엇보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코스는 숲을 거니는 느낌을 주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정설이 되어서 본인의 실력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슬로프***에요. "Ode to Joy(환희의 송가)"라는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이런 슬로프도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Flute Summit & Bowl

**Harmony Peak & Burnt-Stew Trail

*** Jeff's Ode to Joy (또는 Founder's Fingers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심포니의 하단부는 마치 숲 속을 거니는듯한 느낌을 주어요 (Jeff's Ode to Joy)
심포니를 오른쪽에 두는 둘레길을 따라 조성된 아름다운 슬로프 (Burnt-Stew Trail)
구름이 살짝 껴 있는 날에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Jeff's Ode to Joy)


머릿속에 남아 맴도는 심포니의 메아리

지금은 휘슬러에 초행길이신 분들께 제일 첫 번째로 추천하는 지역이 되었네요. 수목 한계선 위 새하얀 세상에서 시작해 나무 사이사이를 가로지르는 이곳은 언제 와도 정말 신비하고 아름다운 곳이에요. 이제는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면서 슬로프 오픈 현황을 확인할 때 제일 첫 번째로 체크하는 리프트이기도 하고요.


제가 심포니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다른 분들도 여기를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휘슬러블랙콤을 놀러 오는 지인들과 함께 스키나 보딩을 하면서 산 여기저기를 한 바퀴 돌아본 다음 어디가 제일 인상적이었는지를 물어보면 보통 둘 중에 한 군데를 꼽는데 그게 바로 심포니였어요. 또 다른 한 곳, 7th Heaven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소개할게요.


IMG_5911.jpg 심포니로 진입하는 입구 (Harmony Peak)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스키를 다르게 즐기는 법을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