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실력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을 받아본 사흘간의 여정(2019)
동기가 스팩만들기던 취미생활이던 여태껏 자격증이랑 큰 관계없는 삶을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오는 자격증이 하나 있었어요. 캐나다 스키강사 자격증, CSIA(Canadian Ski Instructors' Alliance)라고 불리는 자격증이죠. 눈 덮인 산 위에서 스키를 타는것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묘한 매력이 느껴지는 자격증이었어요.
캐나다 스키강사 자격증은 총 4단계로 나뉘어 있는데, 첫 번째 단계인 레벨1은 패러랠 스킹을 수준급으로 구사할 수 있는지, 영어(또는 프랑스어)로 기초적인 의사소통과 강습이 가능한지, 앞으로 강사로서 더 나은 스키기술과 교습법을 배울 자세가 되어있는지에 대해 체크하는 정도라고 들었고, 보통 레벨2 부터를 본격적인 커리어의 시작으로 보더군요.
미국에 PSIA(Professional Ski Instructors of America)라는 비슷한 자격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국경을 넘어가는 수고를 하며 옆동네(?) 자격증을 도전하느냐 하면, 지리적인 요인이 제일 컸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제가 종종 "윗동네"라고 부르는 브리티시 컬럼비아가 가까운 것도 한몫하긴 했지만, 제일 큰 이유는 바로 "휘슬러블랙콤" 이었어요. 제가 사는 곳에서 제일 가까운 빅 마운틴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종종 레슨을 받으며 스키를 배우고 있었거든요. 특히 레슨을 받다가 CSIA에 도전한다고 이야기를 하면 현지 강사분들이 여러 가지 꿀팁들을 전수해 주시곤 했었어요. 어차피 자주 가는 동네이기도 하니 기왕 하는 거 레슨을 받던 곳에서 자격증을 도전해 보는 게 낫겠다 싶어서 약간의 오가는 수고를 하기로 했죠.
나중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난 후 차츰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 두 나라는 서로의 자격증을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있더라고요. 한 예로, 스키장비 등 아웃도어 용품들을 판매하는 곳에서는 pro-deal이라고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시할인같은 혜택들이 있어요. 그런데 미국의 리테일러에 CSIA자격증을 제시하면 인정들을 해 주시더라고요. 반대방향(PSIA를 캐나다 아웃도어샵에서 인정받음)으로도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어쨌든 언젠간 도전해보고 싶었던 자격증이었고, 적당한 날짜를 잡아 밴쿠버에 가서 3일 동안 코스 과정을 밟고 시험을 쳤네요. 그동안 스키스쿨에서 강습을 받아보곤 했지만, 고객이 아닌 "잠재적인 동료"라는 입장에서 진행되는 수업은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보통 스키장에서 받던 레슨은 고객의 입장에서 받았던 것이었고, 수업은 고객중심으로 진행되었죠. 그날그날 강사분과 함께 즐겁게 스키를 탈 수 있었으면 그만인 것이었지만, 이번엔 달랐어요. 고객이 아닌 "동료"가 되기 위해 실력과 태도를 검증받았어야 했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재도전을 해야 했죠. 실제로 탈락도 낮은 비율이지만 발생하곤 합니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취득 난이도가 훅훅 올라간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만큼 많은 것들을 알려주셨고, 피드백 속도도 빨랐어요. 낮에는 눈 위에서 몸을 움직이고, 밤에는 나누어준 책자들을 보면서 이론에 대해 숙지를 했어야 했죠. 그리고 3일이라는 시간을 두고 진행되었던 과정이라 일반적인 스노스쿨, 스키캠프와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양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야 했어요. 이것도 훗날 레벨2로 올라가는 과정을 밟으면 레벨1 과정에 대해 어떤 생각을 다시할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이 세계(?)에 새로 발을 들여놓으려는 사람으로서 지금은 만만치 않은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업이 진행되는 내내 심리적인 압박을 받았고, 그만큼 성장을 한 것 같습니다. 코스를 진행해주신 Jullian과 Curtis에게 큰 감사를 드리고 싶고, 함께 고생하며 수업을 들은 같은 반 친구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 아, 그리고 CSIA에 대해 저에게 알려준 승우도 잊지 말아야겠죠.
이번에 캐나다 스키강사 레벨1 코스를 밟으면서 배우다 보니, 자연스레 옛날 강원도에서 배웠던 몇 번의 강습 경험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재미있는 것은, 제가 강원도에서 받았던 몇 번의 강습들은(마지막 레슨을 받았던 것이 10년이 넘긴 했지만...) 대부분 "실력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약간의 스트레스도 같이 동반되었다면, 캐나다 스키 강사코스에서는 스노스쿨을 고객서비스의 관점에서도 접근하기 때문에 "즐기는 것(fun)"을 중심으로 두고 접근하는 인상을 받았어요. 특히 몇몇 지인강습이나 사설강습 사례들을 이야기하거나 직접 보여주면서 "정말 이 사람들이 재미있게 배우고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도 던지시고 말이죠.
가만히 생각해보면 의미있는 관점인 것 같아요. 스키나 스노보딩을 직업으로 가질 사람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키를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강습을 받는 것이니 말이죠. 그런데 그 과정이 즐겁지 못하다면?!... 뭔가 모순에 빠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한편으론 '시대 차이나 문화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보통 한국의 사교육 시스템은 대부분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에 길들여진 교육을 받는 사람들(=강습생)은 나의 실력향상을 위해서라면 약간의 스트레스는 기꺼이 감수하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요? 그래서인지 전반적인 품새는 강원도에서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더 잘 잡혀있다는 인상도 받았어요.
사실 저의 강원도 이야기는 10년도 더 된 이야기라, 요즘 대한스키지도자연맹(KSIA)에서는 그때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보았어요. 답은 모르겠지만, 2010년의 강원도와 2020년 캐나다의 재미있는 강습 문화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기회였네요..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니 저의 실력이 성장했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아직 공인된 강사라는 느낌까지 들지는 않더군요. 무엇보다 아직은 강사로서 일을 해보지도 않은 것도 있고, 앞서 이야기했듯이 본격적인 커리어의 시작은 레벨2로 보는 것도 있고 말이죠. (레벨2가 되면 강사자리의 선택지와, 수강가능 과목들이 늘어나더군요)
이후에 레슨을 받으러 가니 몸풀기 스킹을 한번하고 난 후 강사가 "You got some lesson!"이라고 하면서 한눈에 알아채더군요. 이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자격증 코스를 마친 후 처음 받는 레슨에서 바로 그런 이야기가 나오니 기분이 참 묘했어요.
이 자격증을 손에 넣고 싶었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각종 프로그램들이었어요. 회원 번호를 받고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다양한 수업들을 수강 신청할 수 있는데 자연설 범프에 특화된 수업이라거나 카빙에 특화된 수업 등 재미있어 보이는 것들이 참 많더라고요. 그중 하나를 찾아 등록을 완료하고 수업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필 코로나가 터져버려서 북미 스키장의 대부분이 문을 닫고 예정되어있던 프로그램이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모로 참 아쉽네요, 수업은 다음 시즌에 노려야겠어요.
어쩌다 보니 캐나다에서 인정되는 자격증 하나를 보유하게 되었네요. 앞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레벨2 너머의 세상도 보고 싶어 졌어요.
Special Thanks to Julian Base, My CSIA Lv.1 Course Condu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