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ive Sep 16. 2021

이방인(STRANGER)

기태가 처음부터 다리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기태가 16살이었을 무렵, 아빠와 엄마 세 식구가 강원도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 

세차게 퍼붓는 비는 자꾸만 기태네 가족의 발목을 잡아끌듯, 집으로 가는 길을 더디게 만들었다. 

와이퍼는 제 나름대로 미친듯이 고개를 흔들며 빗물을 치워냈지만, 역부족이었다. 

여기에 뿌옇게 차오르는 서리까지 더해져, 운전하는 아빠의 시야는 흐려지고 있었다. 


"어어.. 여보!! 앞... 앞에!!!" 

다급한 엄마의 외침은 끝을 맺지 못하고, 꽝! 쿠르르르릉... 하는 굉음소리로 대신했다. 

기태도 그 장면이 생생했다. 아직 굳지 않은 콘크리트가 뱅글뱅글 돌아가던 레미콘의 모습을 보면서, 멀미로 울렁거리던 속이 더 메쓰껍다고 느껴지던 그 때. 번쩍 하는 섬광에 눈을 찌푸렸다가 떠보니, 

하얀천장에 위태롭게 매달린 형광등이 깜빡거리는 곳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상황파악이 덜 된 채로 기태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보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눈을 막 떴을 땐 분명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니 주변이 엄청난 소음으로 가득차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 때 하얀 가운을 입고 눈이 뱀처럼 생긴 남자가 기태를 향해 얼굴을 수욱 들이밀었다. 


"환자분. 정신이 좀 드세요?" 

'환자? 환자라고?' 

"여기 병원입니다. 사고가 있었어요. 기억 안나세요?" 

"사고...?" 

"마주 달려오던 레미콘 차량과 크게 부딪히면서..."

"잠시만요! 선생님... 제 다리가...!!" 


그랬다. 기태는 자꾸만 자기 몸이 낯설게 느껴졌는데, 겨우 고개를 들어 아래쪽을 살펴보니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이불에 덮여 있었지만, 아래쪽은 축 꺼진 상태로 이불 그 자체만 있을 뿐이었다. 


"하반신을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살아서 천만다행입니다." 

'천만다행이라고? 두 다리가 잘려나갔는데, 다행이라고?' 


육상선수가 꿈이었던 기태에게 두 다리가 사라졌다는 건,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의사는 해맑게 웃으며 천만다행이라고 했지만, 기태는 자신을 보며 웃는 의사의 입을 찢어놓고 싶을 만큼 분노로 가득 차올랐다. 게다가 의사는 웃는얼굴이 박제된 모양인지, 기태의 부모님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셨다는 말을 해맑은 표정으로 수다스럽게 이어갔다. 


기태의 삶은 그 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이모, 이모부. 고모, 고모부. 기태를 돌봐줄 친척들이 있었지만, 

남보다 못했다. 그들은 기태를 짐처럼 취급했다. 

명절마다 육상꿈나무가 왔다느니, 모델을 해도 되겠다느니, 기태에 대해 마르고 닳도록 칭찬하던 그들이 기태의 다리가 잘려나가고 나자, 하나같이 혀를 차며 외면했다. 


집에서도 눈치를 봐야했던 기태의 삶은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야! 매점가서 아이스크림 좀 사와라. 녹차맛으로." 


처음엔 눈을 부라리며, "내가 왜 니가 먹을 걸 사오냐?" 라고 했다가 눈에 핏줄이 다 터지도록 얻어맞았다. 

그 날 이후로 기태는 아무말 없이 끽끽 기분나쁜 소리가 나는 휠체어를 끌고 매점에 가야했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도록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아이들 간식셔틀로 하루를 보냈지만, 

아이스크림이 녹았다며 맞고, 맛없는 간식을 사왔다며 맞고, 나중에는 기태의 눈빛이 마음에 안든다며, 

그냥 기태 자체가 마음에 안든다며 아이들은 기태를 툭하면 밟고, 밀치고, 침을 뱉으며 본인들의 화를 풀었다.이렇게 학교를 다녀서 뭐하나 싶었던 기태는 차라리 돈을 벌기로 했다. 

하루종일 앉아서 단순노동을 할 수 있는 곳에 취직해 벽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를 맡으며 어딘가에 들어가는지도 모를 작은 부품을 끼워넣는 일을 기계처럼 했다. 기계처럼, 소처럼, 개처럼 일을 했지만, 기태는 그만큼의 돈을 받지 못했다. 밀리는 일도 다반사였고, 일을 엉망으로 해놨다며 쫓아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비슷한 일을 또 구했지만, 기태에게는 모두가 부당했다. 돈을 제대로 주지 않았고, 무시했다. 


그날도 그 때처럼. 강원도에서 기태의 인생이 한순간에 달라진 그 때처럼,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이었다. 

우산이 없었던 기태는 낡은 휠체어에 앉아 온몸으로 비를 맞아야했다. 

녹색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며 형형색색의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태는 눈에 띌 수 밖에 없었다. 

모두가 딱한 눈빛으로 기태를 바라봤지만, 누구하나 우산을 씌워주는 이는 없었다. 


"녹색불이 켜졌습니다" 

안내멘트가 청아하게 들려왔지만, 기태는 건너지 않았다. 

사람들 무리에 섞여 끽끽대는 휠체어 바퀴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무표정하게 횡단보도를 보고 있는데 저 앞에서 다리를 절룩이며 걸어오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녹색신호등은 10초 카운트다운을 세고 있었다.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지만, 

할아버지의 걸음은 더디기만 했다. 그 순간 빨간불로 바뀌었다. 몇몇 차들은 빵빵거리며 할아버지가 빨리 건너가기를 재촉했다. 그 때 무리하게 속도를 내며 달려오는 레미콘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기태는 그 때가 떠올랐다. 멀미로 울렁거리던 속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레미콘을 보며 더욱 메스껍다고 느꼈던 그 때. 이대로가면 그때처럼, 레미콘차량과 할아버지가 정면으로 충돌할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기태는 고민할 새 없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휠체어에 기대고 있던 몸을 있는 힘껏 날려 할아버지를 뒤로 밀쳐냈다. 동시에 빠앙-소리와 함께 레미콘 차량은 뒤늦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횡단보도를 넘어선 뒤였다. 기태가 몸을 날려 할아버지를 밀쳐내지 않았다면,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도 남았다. 


"고맙네.. 젊은이. 몸도 성치 않은데 덧없는 이 늙은이 목숨을 살려줘서..." 


기태는 괜히 머쓱해졌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나간 행동이었다.  

그런데 방금전까지 다리를 절룩이던 할아버지가 아무렇지 않게 두 다리로 우뚝 서더니, 기태를 들춰업고 

너무도 멀쩡하게 뚜벅뚜벅 기태의 휠체어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기태는 당황스러웠다. 


"자. 받게나. 내 목숨값이라네." 

할아버지는 기태에게 낡은 수첩하나와 펜을 주었다. 


'뭐지? 데스노트?' 

자신의 생각이 너무 황당해서 기태는 피식하고 웃었다. 기태는 치매에 걸린 노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젊은이. 이 노트에 소원을 적으면, 그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질걸세. 딱 하나만 이룰 수 있으니, 신중하게 고민하고 써야할 것이야." 

"네? 소원..이요?" 


이 역시 황당해서 기태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할아버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멀어지는 뒷모습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할아버지는 흔적조차 없었다. 꿈을 꾼 것 같았다. 아니, 꿈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머리맡에 놓인 수첩과 펜이 눈에 들어왔다. 

꿈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설마.. 말도안돼..." 


기태는 고개를 내저으며, 수첩과 펜을 한쪽 구석으로 치워놓고, 또 다시 일터로 향했다. 무시 당하고, 

벌레 취급을 당해도 덧없는 목숨이 붙어있으니, 꾸역꾸역 일을 하러 나갔다. 

일을 하면서도 뿌연 안개처럼 이런저런 소원들이 떠올랐다. 말도 안되는 소원을 떠올리면서 기태는 오랜만에 피식 웃기도 했다. 그 순간 천장에 매달려있던 형광등이 깜빡거리다가 팍 나가버렸다. 

머릿속으로 그려나가던 기태의 소원도 팍 소리와 함께 까맣게 지워졌다. 

부품 하나 끼우는데 1초면 충분하다며 매일같이 소리치던 공장 주임, 흔히 공장장이라 불리는 그는 그날 기태를 죽을 듯이 패댔다. 형광등이 나가면서 잠시 주위가 어두워졌지만, 그 이전 작업물도 기태가 엉망으로 해놨기 때문에 형광등 때문에 잘 안보여서 실수했다는 말은 비겁한 핑계에 불과했다. 이건 그냥 기태의 실수였다. 어젯밤 있었던 일로 하루종일 머리속이 멍했던 기태의 잘못이었다. 공장주임은 기태를 죽을 듯이 패댔지만, 비열한 그는 기태의 얼굴은 절대 건들지 않았다. 잘려나간 하반신을 집중 공략해서 발로 차고 또 찼다. 


"다리 없는 병신인데, 여긴 아무리 맞아도 안아플 거 아냐! 안그래? 어? 안그래?" 

퍽퍽퍽퍽퍽. 


다리가 없어 기다랗게 축 늘어진 청바지만 걷어찬다고 해도, 분노로 차오른 사람의 발길질이 어디 기계만큼 정확할까. 그 발길질은 기태의 가슴을 치기도 하고, 복부를 내리치기도 했다. 

엉금엉금 기어 공장주임의 발목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해야, 겨우 감정을 추스르는 그였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기태의 입에서 '살려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덜너덜해진 기태는 그날 밤 자신의 소원 하나를 적었다. 


"나만 걸을 수 있고, 세상 사람 모두가 걷지 못하게 해주세요." 


기태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올랐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노트에 꾹꾹 눌러쓴 자신의 소원을 보고 있으니,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자신을 괴롭히고, 무시하고, 밟아왔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기태는 다리가 절단된 그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비웃는 상상을 했다. 엉금엉금 기어 기태의 두 다리를 붙여잡고 살려달라 애원하는 그들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자신의 모습도 떠올렸다. 기태는 그들보다 우월해진 자신의 모습을 계속 상상하고 싶었지만,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기태는 너무 놀라 억 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멀쩡하게 두 다리가 붙어있었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항상 있었던 것처럼. 기태는 조심스럽게 다리에 힘을 주며 일어나보았다. 아무 문제 없었다. 걷는 것도 문제가 없었다. 굳이 힘을 주지 않아도 너무 쉽게 걸을 수 있었다. 


기태는 부랴부랴 상자에 보관만 해놓았던 운동화를 꺼내 신어보았다. 어제도 신었던 것처럼 낯선 기분이 들지 않았다. 혹시 이 모든 게 꿈은 아니었을까. 사고가 나서 다리를 절단한 것부터. 그 때부터 긴긴 꿈을 꾸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끽끽.. 기분나쁜 소리를 내는 휠체어를 발로 툭 차보았다. 철컹!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기태의 두 다리는 튼튼했다. 기태는 벅차오른 마음으로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향했다. 기태는 기뻤다. 행복해서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문 밖의 풍경은 어딘가 낯설었다. 사람들 모두 다리가 없었다. 하나같이 휠체어에 올라타 있었다. 

그 모습은 자연스러웠고, 낯설지 않았다. 왼쪽, 오른쪽, 앞, 뒤. 어딜 둘러보아도 사람들 모두 다리가 없었다. 

그런 곳에 우뚝 두 다리로 서 있는 기태를 사람들은 이상하게 쳐다봤다.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보는 이도 있고, 수군거리는 이도 있었다. 기태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 때마다 사람들은 기태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혀를 끌끌 찼다. 누군가는 기태를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봤고, 누군가는 기태를 비웃었다. 


다리가 없는 인간들이 사는 세상. 기태만 홀로 다리가 있는 인간. 

기태의 소원은 이뤄졌지만, 기태는 또 혼자였고, 이방인이었다. 모두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