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8일. 그런 일을 겪어서 그럴까 숫자도 뭔가 불길한 느낌이다.
오늘 우리는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저녁을 먹고, 집을 돌아가려고 했다. 지하철 선로 침수로 운행하지 않는다는 역무원의 안내에 우리는 재빠르게 버스로 선회했다. 시간당 약 137mm라는 엄청난 폭우 때문에 역사는 물바다가 되어 있었고, 택시는 잡히기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는 순간도 쉽지 않았다. 버스 이외의 교통은 마비된 상황에서 모두들 버스를 타기 위해 치열했고, 엄청나게 내린 비에 온몸이 젖어가고, 날카로운 우산들은 서로를 찌르고 있었다. 그래도 빠른 판단으로 탄 덕분에 우리는 자리에 앉았지만 단 1 정거장 만에 버스 안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그리고 지옥은 그때부터였다.
버스 안은 '만원'이라는 의미를 지나쳐 '포화'상태였다. 더 이상 누구도 탈 수 없는 그런 상황. 그 속에서 버스 정류장에 하나씩 도착할 때마다 버스 안의 사람들과 정류장에 있는 사람들의 욕과 고성이 난무했다. 더 이상 탈 수 없다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공간이 있는 거 같은데 조금씩만 들어가 달라는 정류장 사람들의 싸움.
마치 '부산행'이나 '스위트홈' 같은 좀비 영화나 '엑시트', '판도라'에나 나오는 그런 장면들이 연상됐다.
버스 내부에서는 버스기사님에게 문을 닫으라는 소리와 욕과 비난이 가득했었다. 내가 놀란 시점은 그때였다. 버스 안에서 한 아주머니가 말했다. "밖에 사람들도 힘들어하는데, 조금이라도 태워줘요!"라는 소리에 문이 다시 열렸고 사람들은 버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좀 더 강렬한 욕과 고성의 반복.
문도 닫히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 말을 한 아주머니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타도 못 가는데, 왜 그런 말을 하냐", "본인이 내리지도 않을 거면서 왜 그러냐"부터 버스 기사님에게 문을 왜 여냐는 욕설까지.
이런 상황 속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거절하며 공황장애가 있는 듯한 남자분은 쓰러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있었고(그래도 자리에 앉고 나서 많이 좋아지셨다), 버스의 멀쩡했던 뒷 문 중 하나는 사람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어서 열리지 않게 되었다.
새삼 무서웠다. 영화에서나 봤던 현실이 단지, 폭우 하나로 현실에서 재현되다니 실제 전쟁이 난다면, 천재지변이 생긴다면 이것보다 더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상황에 있는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내가 만약 자리에 앉지 못했다면 그분들과 같은 반응이었을 거 같고, 버스를 타지 못해서 폭우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어도 정류장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반응이었을 거 같기 때문이다.
나 역시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비슷한 반응이었겠지만, 우리의 평범하고 무난하고 때로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엇 하나가 틀어졌을 때 사람들의 본성과 인간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걸 가장 잘 보게 된 순간이었던 거 같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경기도로 갈수록 타는 사람보다 내리는 사람이 많아지고 버스 안에 공간이 생기자 별 거 아닌 기사님의 농담에 사람들은 피식거리며 웃고 있었다. 같이 고생하면서 버텼다는 안도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게 무서웠다. 내가 버스에서 내려서 보니 탈 때는 멀쩡했던 문이 휘어진 상태로 다시 정류장을 떠나고 있었다. 단지, 몇십 개의 정거장을 지나갔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