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리 이야기
#2화
“지역창업부 서지안 대리님?” 은유가 말했다.
금강과 미나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고는 다시 은유를 쳐다봤다.
“네가 서대리는 어떻게 알아?” 금강이 놀란 듯 물었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더니 갑자기 이 얘기를 안다고?” 미나가 이어서 말했다.
“아니, 서지안 대리님 유명하시잖아. ‘그 얘기’는 뭐야?” 은유가 말했다.
금강은 ‘휴우’ 소리를 내며 숨을 내뱉었다.
“그러면 그렇지, 네가 알 리가 있나.” 미나가 말했다.
“아니! 서지안 대리님, 그 예쁘기로 유명한 사람 말하는 거 아니야? 그분한테 무슨 ‘썰’이 있어?” 은유가 말했다.
금강이 은유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은유야.” 금강이 말했다. “우선 한 잔 해.”
세 사람은 잔을 치고 세 번째 소주를 주문했다.
“아, 그래서 그 얘기가 뭐냐고!” 은유는 목소리를 높였다.
“‘서대리 이야기’를 해야…”
금강이 말하는 와중에 미나가 끼어들었다. “서지 않는 사람도 서게 만드는 서지안 대리.”
금강은 미나를 흘겨봤다. 미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지금부터 말해줄게.”
-
서지안 대리.
그녀는 입사 전부터 이미 회사의 유명 인사였다.
단지 그녀가 이 회사에 지원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학교 선배들을 통해 ‘예쁜 애가 온다’며 소문이 파다했다.
그만큼 그녀의 외모는 훌륭했다.
쌍꺼풀이 얕게 자리 잡은 눈, 마치 세워 놓은 것처럼 반듯한 코, 립스틱을 바르지 않아도 빨간 입술.
그 모든 게 작은 얼굴 안에 다 들어있었다.
키 또한 168로 큰 편이라 작은 얼굴이 더 작게 느껴지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사기적인 비율을 가진 탓에 단체 사진을 찍을 때면 언제나 그녀의 주위가 텅 비곤했다.
그녀의 근처에서 얼씬거리다가 사진이라도 찍히는 날엔 그대로 평생의 굴욕샷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최종 합격과 함께 EP에 사진이 게시되었다.
많은 합격자들 사이에서 그녀의 사진은 단연 돋보였다.
마치 오징어와 망둥어 사이에 있는 한 마리의 흰 매를 보는 것과 같았다.
그녀는 ‘서지안 주임’으로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의 구애가 있었다.
누군가는 대놓고 그것을 표현했고 또 누군가는 알게 모르게 은근히 대시를 했다.
그녀가 남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은 복도의 프린터기도 아는 사실이었다.
많은 사람들 중 그녀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입사 동기 황준호 주임이었다.
그는 중학생 시절까지 씨름 선수를 했을 정도로 체격이 큰 사람이었다.
짙은 눈썹과 각진 턱을 가진, 잘생긴 외모라기보단 누가 봐도 강해보이는 남자다운 외모였다.
짧은 목과 두터운 등 때문에 뒷모습만으로도 사람들은 그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와 서지안 주임이 사귄다는 사실은 그들이 공식적으로 인정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그들의 교제 사실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이 있을 때의 눈빛, 태도 그리고 온도가 그들의 관계를 증명해주었다.
서지안 주임에게 추파를 던졌던 사람들은 못내 아쉬웠지만, 자신보다 까마득한 후배인 황준호 주임이 무서워 다시는 그녀에게 다가가는 사람은 없었다.
한동안 황준호 주임의 입은 귀에 걸려 있었다.
회사에서 제일 미녀이자 자신의 동기인 서지안 주임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보다 더 큰 만족감을 주었다.
그러나 그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셔츠를 터질 듯이 꽉 채웠던 그의 등 근육이 날이 갈수록 작아졌던 것이었다.
분명 같은 셔츠를 입었는데도 점점 그의 등과 셔츠 사이에 공간이 남기 시작했다.
회사 사람들은 그에게 ‘어디 아프냐’고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황준호 주임은 “그저 피곤해서요”라며 말을 아꼈다.
매일 점심 때마다 12층 회사 헬스장에 가던 그의 운동 출석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에 반해 서지안 주임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생기가 돌았다.
원래도 예쁜 그 얼굴에 광채까지 더해지니 낮에 보면 실제로 눈이 부실 정도였다.
단지 예쁜 것만으로는 나올 수 없는 그 어떤 반짝거리는 윤기가 얼굴과 몸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둘이 같이 서 있을 때면 황준호 주임은 곧 겨울을 맞이하는 수분을 빼앗긴 고목나무 같았고 서지안 주임은 막 꽃을 피워낸 봄날의 개나리 같았다.
사람들은 황준호 주임의 건강을 걱정했지만 그는 늘 괜찮다고 할 뿐이었다.
사건은 가을 전사 체육대회 때 발생했다.
황준호 주임은 부서 대표로 줄다리기에 참여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의 모습과 확연히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는 키가 크고 남들보다 뼈가 굵었기에 부서원 누구도 그의 출전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휘슬이 채 2번 울리기도 전에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땡겨!”를 두 번 외치던 중 그가 쓰러져 버린 것이었다.
모든 체육대회 경기가 즉시 종료되었고 다시 재개하지 못했다.
그가 들것에 실려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동안 서지안 주임 또한 그 옆을 같이했다.
그가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도 서지안 주임은 매일같이 그의 병문안을 가야 한다며 칼퇴를 했다.
회사의 남자 직원들은 그 모습을 내심 부러워했다.
사람들의 부러움과는 다르게 황준호 주임은 병원에 입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직서를 제출했다.
모두들 그의 퇴사 소식에 깜짝 놀랐다.
입사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신입 직원이, 심지어 사내 커플이 이직하는 것도 아닌데 이유도 없이 그저 퇴사하는 일은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그가 로또에 당첨돼서 회사를 그만둔 것이다, 아니다 가업을 잇기 위해 그만둔 것이다, 그것도 아니다 바람을 피다 걸려서 쪽팔려서 그만둔 것이다 등등 사실 확인이 되지 않는 소문이 가득했다.
그러던 중 묘한 소문이 회사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가 퇴사한 이유가 다름 아닌 서지안 주임의 섹스 중독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황준호 주임은 처음엔 그녀의 적극적인 모습을 좋아했었다.
20대 후반의 건장한 남자로서, 그는 처음에는 그녀의 요구에 모두 응해주었다.
차고 넘칠 만큼 에너지가 많았던 그였기에 주말 동안에는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밤이든 낮이든 밖에 비가 오든 꽃이 피든 그저 커튼을 닫아놓고 둘 사이의 숨소리에, 살결에 집중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 그녀의 요구에 점점 그도 벅차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 사실을 내색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힘들다고 하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최소 하루 2번, 주말에는 가능한 많이를 요구하는 그녀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무리를 했기 때문에 그의 체중은 점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의 얼굴이 생기를 잃어가고 동태 눈깔이 되었던 이유도 그녀의 감당할 수 없는 요구 때문인 것이었다.
그러던 중 체육대회에서 실신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었다.
처음에 그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입원해 있으면 적어도 그 기간 동안은 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매일같이 병문안을 가장해 자신을 찾아와 관계를 요구하는 탓에 그는 병원에서도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다.
그는 “입원 중이니까 하루에 한 번으로 봐줄게.”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퇴원과 동시에 퇴사를 한 뒤 잠적해 버린 것이었다.
서지안 주임이 섹스 중독자라는 괴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사람들에게는 그저 좋은 가십거리일 뿐이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그녀가 지나가고 난 뒤 혹은 그녀가 없는 술자리에서 그녀의 얘기를 필수 반찬처럼 빠지지도 않고 나왔다.
그녀에 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뒤 모 과장은 그녀에게 메신저를 보내 따로 술 한 잔 하자고 제안을 했고, 그녀는 그것을 칼같이 거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장은 퇴근하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 같이 저녁을 먹자며 졸라대다가 발을 밟혀서 퇴근길 여의도 한복판에서 망신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또 어떤 부장은 회의가 끝나고 난 뒤 서지안 주임만 남게 하고 모두 나가게 만든 뒤에 그녀의 손을 쓰다듬으며 집에 비싼 위스키가 있는데 같이 먹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가 그녀가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으로 그를 신고해서 부장직을 박탈당하고 먼 지방으로 좌천되는 일이 있었다.
그 부장은 발기부전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때부터 서지안 주임은 ‘서지 않는 사람도 서게 하는 서지안’이라는 별명으로 알게 모르게 불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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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얘기 진짜야?” 은유가 물었다.
“모르지.” 미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진짜인지 아닌지가 중요해? 일단 한 잔 해.” 금강이 잔을 돌렸다.
은유는 잠깐 멍하니 잔을 들고 있었다. 보다 못한 미나가 그의 팔을 살짝 들어 잔을 입가에 갖다 댔다. 그는 조건 반사처럼 잔을 비웠다. 빈 잔의 유리 빛이 잠깐 떨렸다.
그의 눈은 빈 잔만큼이나 텅 비어 있었다.
“야, 무슨 생각 해?” 금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니… 그렇게 예쁜 사람이 그, 중독이라니. 믿기지가 않아서.” 은유가 말했다.
“아직도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해?” 금강이 물었다.
“그런데 그 별명, 누가 만든 거야?” 은유가 되물었다.
“별명은 그냥 생겨. 빠르고, 쉽고, 이해가 잘 되거든. ‘서지 않는 사람도 서게 만드는 서지안’—이 한 줄이면 다들 고개 끄덕이잖아.” 미나가 말했다.
은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가자. 다 마셨다.” 금강이 계산대 쪽으로 향했다.
미나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더니, 여전히 생각에 잠긴 은유의 뒤통수를 톡 하고 건드렸다. “정신 차려.” 그녀는 은유의 재킷을 건네주었다.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훅 들어왔다. 겨울은 겨울이었다. 아직 눈 한 번 내리지 않았지만, 온도와 냄새가 계절을 말했다.
“조심히 들어가.”
미나는 춥다며 버스 정류장 쪽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우리도 들어가자.”
금강이 은유의 어깨를 감싸며 여전히 감상에 빠져 있는 그를 지하철 역 쪽으로 이끌었다.
은유는 머릿속에 침대 위 발가벗은 서지안 대리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자연스레 아랫도리로 피가 쏠리는 것을 느꼈다.
얼굴에 차가운 공기가 닿았지만, 그 감각은 쉽게 식지 않았다.
‘그래서 다들 그 별명을 말하는구나.’
그는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서지안.
은유는 그녀의 이름을 생각했다.
이름이라기보다 문 같았다.
문을 열면, 루머의 빈 방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실제로 서 있는 곳일까.
은유는 그 문 손잡이를 쥐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