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안녕 주정뱅이

술에 관한 단편 소설, 권여선

by 설애

술에 관한 시 두 편을 나란히 올리고 나서 이 책이 떠올랐다.


술 없는 나라는 없다

노동의 새벽


안녕은 만남의 인사인가, 헤어짐의 인사인가

책 표지에 저렇게 서있는 사람과 그 주변인들은 모두 투명하다.

투명하도록 아프다.
소주를 커피잔에 부어 먹어야 그 투명이 메워질 것 같다.


이 소설은 7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다 읽고나면 이야기가 도꼬마리나 도깨비바늘 열매처럼 여기저기 붙어온 기분이 든다.

술은 모든 단편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각 단편의 술 묘사를 나열해본다.


봄밤 : 맥주 한 캔을 따서 한모금 마신 후 캔의 좁은 입구에 소주를 따랐다. 또 한모금 마시고 소주를 따랐다.
삼인행 : 눈이 내리고, 술은 들어가고, 이러고 앉아 있으니까 말야, 규가 초조하게 술잔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이모 : 조금씩 술이 오르면서 그녀는 세운 무릎 위에 손을 엇갈려 얹고 그 위에 턱을 고인 웅크린 자세로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카메라 : 골뱅이 무침과 생맥주가 왔다. 그들은 잔을 부딪히고 맥주를 마셨다. 문정은 그동안 자신이 맥주를 무척 마시고 싶어했다는 걸 깨달았다.
역광 : 그녀는 가방을 열어 옷과 책을 정리하고 커피잔에 소주를 부어 천천히 마셨다.
실내화 한켤레 : "낙지! 산낙지였다, 산낙지. 포장마차에서 산낙지 사가지고 와서 위스키랑 먹었잖아."
층 : 그녀는 블라인드를 반만 올린 거실에서 라면과 소주를 먹었다. 부디 오늘 밤엔 깊이 잠들고 싶었다.


작가의 말
: 술자리는 내 뜻대로 시작되지 않고
제멋대로 흘러가다
결국은 결핍을 남기고 끝난다.
술로 인한 희로애락의 도돌이표는
글을 쓸 때의 그것과 닮았다.


이 책에서 봄밤은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녀가 술을 마시는 방식이 아찔했다.

점점 진해지는 아픔 같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들 따라 읽는 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