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쉰일곱(1)
시인 것
김선우
어느 새벽 시를 두 편 썼다 “이게 시가 되는가?” 한 사흘 골똘히 들여다보다 한 편을 골라 들고 한 편은 버렸다
시가 되겠다 판단한 시 한 편, 한 문장 한 구절 한 글자씩 뜯어보며 한 이틀 매만지다 벼락, 회의가 든다 “대체 시란 무엇인가?”
시가 시에 갇혀버린 느낌 ‘시가 된다’는 느낌이 다시 감옥이 되어버린 느낌, 시가, ‘시가 된다’는 느낌을 깨고 나올 때까지 나는 아직 기다려야 한다
시가 아니려고 하는데 결국 시인 것 시를 벗어나려고 하는데 끝내 시인 것 파닥파닥한 시의 지느러미에 경계와 심부를 동시에 베인 듯한 여기를 베고 저리로 이미 흘러가는
그런 시를 기다린다 영원을 부정하자 사랑이 오듯이 영원을 부정해야 사랑 비슷한 것이라도 오듯이
시라는 것은 그냥 느끼는 거라고,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듯 해부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마치 미술관에서 설명 없이 그림을 감상하듯, 내 마음대로 보는 거죠. 그러다 마음에 드는 시를 만나게 되는 것은 불현듯 오는 사랑 같은 것인지도 몰라요.
설애 드림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