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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묘비명: 디오판토스에서 시작된 수수께끼

수학자 디오판토스

by 설애

방정식의 아버지 디오판토스의 묘비명은 방정식이다.


디오판토스는 <산술>을 저술했다.

디오판토스가 살던 고대 그리스, 3세기는 계산이란 노예처럼 천한 신분이 하는 일이고, 교양인이면 기하학을 공부하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디오판토스는 기하학이 아닌 대수를 공부해서 <산술> 13권을 편찬했고, 그중 6권이 후세에 전달되었다. 그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것은 그가 대수를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 모르지만, 그의 수수께끼 같은 묘비명으로 인해 그가 몇 살에 죽었는지는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묘비도 찾을 수 없고, 이 묘비명은 그리스의 시나 수수께끼를 모은 책인 <그리스 명시선집>에 실렸다고 하는데 사실 확인이 어렵다.


이것이 묘비명이다.

여기에 디오판토스 일생이 기록되어 있다. 생애의 1/6은 소년이었고, 그 후 1/12이 지나서 수염이 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또다시 1/7이 지나서 결혼을 하였다. 그는 결혼한 지 5년 뒤에 아들이 태어났으나,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반밖에 살지 못하였다. 그는 수학으로 슬픔을 달래다가 아들이 죽은 지 4년 후에 죽었다.


(방정식의 해 84세)




디오판토스의 <산술>에 페르마가 주석을 달아 놓는다.

후세에 피에르 드 페르마가 <산술> 책을 읽다가 피타고라스 정리(n=2인 경우)에 대해 언급하면서, n>3 이상인 경우에 대해


"나는 이 사실의
참으로 놀랄 만한 증명을 발견하였으나, 그것을 적어 넣기에는
이 여백이 너무나 좁다"


는 유명한 메모를 남겼다. 사실 프랑스의 페르마는 유명한 수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오를레앙대 법대를 졸업한 법조인이다. 수학은 그의 취미였고,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아들이 디오판토스의 책에 달아놓은 주석을 포함한 책을 출간하여 유명해진 것이다.

1670년 출간된 피에르 드 페르마의 주석이 달린 디오판토스의 《산술》(Arithmetica) 제2권 8번 문제(라틴어: Qvæstio VIII) 밑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있다


츌처: 주간 동아


이것이 페르마 마지막 정리의 시작이 되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페르마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정리가 아니라 후대 수학자들이 마지막으로 정리한 것이라는 뜻이다. 디오판토스의 책에 페르마의 한 마디가 수학자들 사이에서 큰 파장을 만든다. 문제는 간단해 보이며, 페르마가 이미 증명했다고 했으니 수학자들은 이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358년 동안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 많은 수학자들이 고민한다.

거기에 독일 수학자 파울 볼프스켈이 유언으로 1908년 상금을 걸면서 유명세가 더해진다.

이 사람은 짝사랑하던 여성에게 차이고 자정에 자살하려고 했는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관한 논문을 보다가 계산 오류를 발견해 문제를 풀다가 자정을 넘기고 만다. 그래서 새로운 삶의 목표를 찾고 이를 증명하는 사람에게 전 재산(10만 마르크)을 주라는 유언을 남기게 된 것이다.

결국 이 문제를 푼 영국의 엔드루 와일즈는 원래 1974년에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졸업 논문으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연구하고 싶어 했으나, 증명하지 못하면 졸업을 못 할 것이기 때문에 지도교수가 추천한 '타원곡선'을 연구하여 1980년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타원곡선론을 연구하는 세계적 학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다시 이 문제를 연구하고 150장에 달하는 증명으로 문제를 푼다. 2016년의 일이다. 상금은 한화로 약 8억원이 되어있는 시점이었다.




디오판토스의 부정방정식에서 시작하여, 페르마의 주석으로 유명해지고, 볼프스켈이 상금을 걸고, 와일즈가 증명한 이 수학의 역사는 세월을 넘어 이어지는 학문 진보의 역사라고 보아도 될까?


한 인간이 죽는다고 해도, 책에 담긴 지식과 호기심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증명을 나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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