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번, 억수
마음에 품은 절개를 꺾지 않고 죽은 사람들이 있다.
시를 묻다.
정의번(1560-1592)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의병이다. 의병장인 아버지 정세아와 함께 의병 활동을 하며 경주성 전투에서 참여하였다. 전투 중 아버지가 말을 잃은 채 왜적에게 갇힌다. 아들인 정의번은 부친을 구하기 위해 말을 아버지에게 주고 적들과 싸우다가 돌아왔다. 하지만 아버지가 보이지 않자 다시 적진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하여 전사한다. 정세아가 돌아와 아들을 찾았으나 그를 구하기 위해 죽었다는 말만 듣게 된다. 또한 정의번의 시체도 찾지 못했다.
시신을 찾지 못하면 신체의 일부를 묻어 무덤을 만들기도 하여, 머리카락을 넣으면 발총(髮塚), 이를 넣으면 치총(齒塚), 신발을 넣으면 혜총(鞋塚), 옷을 넣으면 의총(依塚)이라고 하며 통틀어 허총(墟塚)이나 허묘라고 부른다. 사람을 찾지 못하고 이렇게라도 무덤을 만드는 것이 안타깝다.
정의번의 시체를 찾지 못했으므로, 그의 친구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를 지어 관에 넣고 장사를 지낸다. 이것이 경상북도 영천군 자양면 성곡동에 시총(時塚)이다. 하지만 시를 묻었다는 시총은 신체의 일부도 아니고, 그의 글과 그의 친구의 글을 넣어 만들었다는 점에서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시 무덤이다.
그의 묘비명 일부를 본다.
시로써 무덤을 삼은은 예에는 없는 예일러니 선유께서 초혼을 하여 장례를 지냄을 말하되 혼은 하늘로 돌아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가느니 진실로 체백이 없으면 사당에서 제사 지낼 뿐 혼지는 장례 할 수 없는 법이라 하였거늘 그러한 즉 화살로 복하고 옷으로 초혼한 것으로는 모두 무덤으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어라 오로지 시라는 것은 그 사람과 닮은 것이기에 가히 체백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니 시로써 무덤을 삼음은 그 또한 예에 어긋하지 않을진저 세상에서는 반드시 뼈로 장례를 한 것은 다행이라 여기고 시로 장례 한 것은 불행이라 여기지만 거친 벌판에 뼈를 묻은 것이 한둘이 아닐지언정 마침에 후멸로 돌아가는데 그 사람과 시는 오래도록 썩지 않는 것이니 이 무덤은 얼마나 위대한 것이랴
<위험한 독서>에서 발췌
억수의 묘
정의번이 아버지를 구하러 나설 때, 종 억수가 따라나선다. 그런 억수를 말리며, 정의번은 자신은 아버지를 구하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나, 너는 남아서 식솔에게 소식을 전하라고 한다. 그러자 억수는 이렇게 대답하며 따라간다.
"임금과 신하나 부모와 자식, 그리고 주인과 종의 관계가 어찌 다름이 있겠습니까. 주인을 버리고 홀로 살아서 돌아가는 자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나서고 같이 전사한다. 억수의 충심을 헤아려 정의번의 시총 아래에는 억수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이 묘가 주목을 받아 2024년에는 영천시공예촌협의회에서 '억수로 가는 길 토마전' 열기도 했다.
그의 묘비명은 이러하다.
충노억수지묘(忠奴億壽之墓)
억수의 묘는 정의번의 묘와 함께 경북 문화재 유산으로 지정된다.
죽음에 높고 낮음이 있을까.
죽음 앞에서도 절개를 꺾지 않은 이들을 본다.
내가 그들의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그럴 수 있을 것인가.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