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드 모파상, 프란츠 카프카, 찰스 부코스키
그래서 삶은 허무한 것인가, 아닌가
고쳐지는 묘비명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05-1893)은 프랑스 사실주의 작가다. <여자의 일생>이라는 장편과 <목걸이>라는 단편으로 유명하다. 모파상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발생했던 시대에 살았으며, 이로 인해 염세주의에 빠진다. 그리고 27세에는 신경질환에 시달리면서 작품활동을 이어나갔다. 글을 읽으면 그의 쇠약함과 예민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의 묘비명은 아래와 같다.
J'ai tout convoité, et je n'ai joui de rien
나는 모든 것을 갈망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즐기지 못했다.
그의 단편 <고인>에는 밤에 묘지에서 시체들이 유령처럼 나와 묘비명을 진실된 문장으로 바꾸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 자끄 올리방이 쉰한 살의 나이로 잠들다. 우인들을 사랑했고, 정직했으며, 선량한 그는 주님의 평화 속에서 잠들었노라."라고 쓰인 문구는 그 자신에 의해 "여기 자끄 올리방이 쉰한 살의 나이로 잠들다. 유산상속을 바라면서 가혹함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재촉했고, 아내에게 고통을 주었으며, 아이들을 괴롭혔고, 이웃을 속였고, 기회만 있으면 도둑질을 한 그는 비참하게 죽었노라."라고 바뀌었다. 모든 무덤에서 시체들이 나와 묘비에 새겨진 거짓말을 지우고 진실을 써넣었다. 그의 아내의 묘비명도 바뀌어 있었다. 원래 묘비명은 "그녀는 사랑하고 사랑받다 잠들었노라."였다.
이런 글을 썼던 모파상의 묘비명은 진실된 것일까?
그는 무덤을 열고 나와 그의 묘비명을 고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볼 수 있을까?
기도하는 묘비명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대계 소설가이다. 체코 프라하에 방문했을 때 그의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도시 한복판에서 움직이는 그의 두상은 관광객들에게 둘러쌓여 은빛으로 반짝이며, 변신하고 있었다. 얼굴이 해체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을 바라보며, 그의 <변신>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가 커피를 마셨다고 하는 카페 루브르와 그가 <시골 의사>와 <성>을 집필했던 황금소로 거리 22번지의 누이의 집까지 둘러보았다. 카프카는 인생의 대부분을 프라하에서 보냈으며, 프라하를 그리고 그의 아버지를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카프카는 동시대의 많은 문인들에게도, 후세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아마 모두가 들은 적이 있을 그의 한 문장을 옮겨본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네.
그의 묘비명을 본다.
To Franz Kafka, who loved people's interior life, anguish was a part of daily life and writing was like an earnest prayer for salvation.
인간의 내면을 사랑한 프란츠 카프카에게
고뇌는 일상이었고, 글쓰기는 구원을 향한 간절한 기도와 같았다.
그의 글쓰기가 구원을 향한 간절한 기도였듯이, 간절한 기도로 쓰인 그의 책은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였다.
헷갈리는 묘비명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1920-1994)는 독일 태생으로 미국으로 이민해서 우체국 하급 직원과 시급 노동자, 부랑자 생활을 하며, 시, 소설을 쓴다.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표현으로, 문단에서는 쓰레기 취급을 받았으나 미국의 젊은 층과 독일에서 인기를 얻었다. 그의 글 일부만 보아도 이런 평가의 이유를 알 수 있다.
도대체 어떤 빌어먹을 인간이 자명종 소리에 새벽 여섯 시 반에 깨어나, 침대에서 뛰쳐나오고, 옷을 입고, 억지로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오줌을 누고, 이를 닦고, 머리를 빗고, 본질적으로 누군가에게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주는 장소로 가기 위해 교통지옥과 싸우고,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하는 그런 삶을 기꺼이 받아들인단 말인가?
팩토텀 中
그의 시집은 서점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한다고 한다. 시도 조금 맛본다.
서로 잘난 척 띄워 주러 모인
유명 인사들의
자축성 개소리
(중략)
이
자축성 개소리는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다.
간혹 예외적으로
수세기씩 계속되기도 한다.
이것은 中,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민음사
이 까칠하고도 대담한 사람의 묘비명을 본다.
Don't try
부코스키의 묘비명은 시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때가 되면 해결되는 일에 대해 애쓰지 말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세상에 적응하기를 거부했다.
많은 사람들이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무엇이 이렇게 우리를 애쓰게 하는가.
묘비명에서 삶의 체취가 느껴진다.
삶을 보며 읽어내야 하는 묘비명의 의미는, 그의 뜻대로 해석되고 있는 걸까?
인생의 허무, 혹은 해탈, 혹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삶이 떠돌고 있다. 죽은 후에는 정리될 것 같은 묘비명도 고쳐지거나, 수없이 해석되고 있다.
모든 글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손에서 해석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묘비명은 그들의 손을 떠났지만,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고 해석되지 않는다.
어쩌면 삶은 그렇게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