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준, 도로시 파커, 벤자민 프랭클린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으니리, 너는 흙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창세기 3장 19절)
나는 보통사람일 뿐.
조선 전기의 진사 이홍준이 자기의 묘비명으로 남긴 글이다. 이렇다 할 행적이 없고 기록이 없어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 모르는 인물이다.
즉, 범인(凡人)이었으니, 묘비명에 남아있는 허탈함이 충분히 이해된다.
재주 없는 데다
덕 또한 없으니
사람일 뿐.
살아서는 벼슬이 없고
죽어서는 이름이 없으니
혼일 뿐.
근심과 즐거움 다하고
모욕과 칭송도 없어지고
남은 것은 흙뿐.
[내면기행], 심경호, 민음사
Excuse my dust.
도로시 파커(Dorothy Parker, 1893~1967)의 묘비명이다. 그녀는 미국의 시인, 단편 작가, 평론가, 풍자 작가, 시나리오 작가였다. 신랄한 독설과 풍자, 그리고 재치 있는 농담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묘비명은 관용어로 "빨리 지나가겠습니다."라는 의미가 있지만, 말 그대로 내 몸이 썩어 흙으로 돌아가니, 양해해 달라는 의미가 있다. 어떤 의미이든 이것이 그녀의 마지막 농담임은 분명하다.
Excuse my dust.
내 시신은 벌레의 먹이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은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인쇄업자, 저술가, 과학자, 발명가, 정치가, 외교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1728년 그가 적어 놓은 묘비명은 그의 묘에는 적혀있지 않지만, 다음과 같다.
출판업자 벤자민 프랭클린의 시신이
여기 벌레의 먹이로 누워 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늘 새롭고 더 우아한 개정판으로 돌아올 것이다.
육체가 사라진다는 점을 객관적으로 본 앞구절에 대비하여 내 업적은 사라지지 않고 진화할 것이라는 뒷구절은 주관적인 관점으로, 자신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으로 보였다. 1728년이면 그가 겨우 20대 초반일 때이니, 자신만만했을 그의 표정이 그려지는 듯하다.
브라질 출신의 이론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마르셀로 글레이서(Marcelo Gleiser)는 그의 책 [뜻밖의 것의 단순한 아름다움]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쓴다.
우리는 자연에서 왔고, 자연 속에 있으며,
다시 자연으로 간다.
어쩌면 이것이 나의 묘비명일 수 있겠다.
표현이 조금 다르지만, 결국 자연/흙에서 와서 자연/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벤자민 프랭클린처럼 후세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기면 좋겠지만, 이홍준처럼 보통 사람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시작과 끝은 흙이다.
깨끗한 흙에 묻히려면, 더럽히지 말고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