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기 시인의 아내, 황학주 시인의 아내 정인희 화가
죽음이 갈라놓은 사랑 앞에 놓인 사람아
연가
- 아내의 묘비명
김상기
목숨이 백 년은
푸르를 줄 알았다
사랑은 천 년도
짧은 것만 같았다
차운 비 한 서슬에
놀라 깨니 적막한 꿈
꽃향기 새소리도
무명(無明)으로 쓸려간다
깊은 강 건너
잊혀진 내 무덤가
그리운 그대 음성
바람결에 뒤채인다
그대 곁으로 가리다
이 시는 김상기(MBC방송 보도국장과 대전 MBC 사장을 역임, 1946-2015) 시인이 아내를 2008년에 먼저 보내고 쓴 것이다. 이 시는 [아내의 묘비명]이라는 시집에 실려있다. 시인은 시집의 제목을 이것으로 고집했다고 한다. 이 시집은 아내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이 담겨있다.
아내가 먼저 떠난 후 그는 아내의 무덤을 매주 찾으며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5년 그는 아내 곁으로 간다. 이는 비유가 아니라, 아내 옆에 합동장을 하여 아내 옆에 묻힌다. 아내의 묘비명이 그들의 묘비명으로 바뀐다. 시에, "깊은 강 건너 잊혀진 내 무덤가 그리운 그대 음성 바람에 뒤채인다"는 구절은 이미 시인이 그린 그들의 미래인 것이다. 죽음 후에도 그의 곁으로 가리라는 애절한 울림인 것이다.
[참고한 인터뷰]
https://news.mtn.co.kr/news-detail/2015102717384585308
여기 또 애절한 사람이 있다. 황학주 시인이다.
전생에서 나는 뭐였나
전생에서부터 당신을 쫓아온 사람
그는 아내 정인희 화가를 전생에서 부터 쫓아온 사람이다. 2018년 결혼하여 함께 제주에서 지내다 2023년 4월, 자택에서 급성 심근병증으로 아내가 먼저 떠난다.
[사랑하는 아내에게]는 2025년 발행된 책으로 아내와 그의 사진, 아내의 글, 그의 글로 이루어진 그의 그리움을 담은 책이다. 묘비명을 찾으려고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아내 정인희 화가가 묻힌 곳의 사진이 실려있었다.
불 켜지 마요
여보, 나 여기 있어요
아내가 안방 문을
사알짝 열며 말한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짜는 기쁨이 끝나간다
금방 나갈께요
불 켜지 마요
꽃다발을 쥐고 있어요
생각한다
어디로 가버렸으면
어떻게 할까
올리브유 사러 간다고 했는데
눈물 쓰러 가는 마음으로
어디까지 간다고 할수 없어
올리브유 사러간다고 했을까
늦여름은 나처럼 개기고 앉아
더운 올리브유를 읍내에서 신안동까지 팔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남아있는 사람의 쓸쓸함과 그리움을 헤아릴 수가 없다. 쓰면서 여러 번 울었다.
나는 왜 울었나, 나는 그가 없으면 어떻게 살 수 있나를 상상했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잘해야지라고 하면서도, 퉁명하게 대답하는 내 입이 미워지는 날이다. 땅 속에서 후회하지 말고 예쁘게 대답해야지. 사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