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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 변화가 만드는 가을

나는 나무 밑에 누워서 하늘이나 보고 싶다만.

by 설애

뜨거운 태양, 출렁이는 바다, 모래사장, 수영복을 입고 튜브를 타고 놀던 그 빛나는 계절이 지나면 가을이 온다. 파도와 같이 부서지던 쨍쨍한 햇빛은 온화해지고,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뻗어 들어가 기어코 그 색을 바꾸어 놓으며 햇볕은 쬘만한 것이 된다. 여름 해의 고도 76.5도가 53도로 낮아짐에 기인하는 것이니, 해의 변화가 곧 계절의 변화다.

해의 고도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해가 머무르는 시간도 변한다. 여름의 퇴근 시간은 '아직 말짱한 시간'이지만, 가을의 퇴근 시간은 '이제 저무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여름의 저녁에는 해야 할 일을 고민하지만, 가을의 저녁에는 괜히 마음만 바빠진다. 출근과 퇴근, 그리고 그 사이의 개인 일과가 단출함에도 여름의 저녁은 여유롭고 가을의 저녁은 바쁘다. 빛의 변화에 유난스러운 나의 탓인지도 모른다.


해가 온화해지는 동안 하늘은 높아진다. 건조해지며 대기 중의 수증기가 적어지고, 여름 장마로 인해 지면의 먼지가 적어져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빛의 산란이 높은 곳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과학적으로 그럴 뿐 가을 하늘은 시원하게 파래서 하늘이 높아진 기분이 든다. 그러므로 가을은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하는 계절이다. 왜냐하면 천장의 높이가 30 cm 높아질 때마다 창의력이 2배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늘은 높이 높이 올라가서 우리의 창의력도 무한대로 증가할 수 있으니 우리는 가을에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한다. 그러니 작가님들은 가을 하늘 아래에서 창의적인 글쓰기에 몰입해야 한다.

해의 고도가 낮아지고, 하늘이 높아지는 동안 대지는 색을 바꾼다. 벼는 익어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처럼 금색 물결을 만든다. 나무는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은행나무는 노랗게, 단풍나무는 붉게, 참나무는 갈색으로 물든다. 그래서 대지 위에서 나무들이 남에서 북으로 '단풍 파도타기'를 하는 가을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대지의 색이 바뀌면 수확하는 손길은 바빠진다. 금색 물결을 만든 벼를 추수하고, 남은 볏짚은 돌돌 말아 곤포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색색이 익는 사과, 대추, 감을 따야 하고(까치밥 잊지 말기!), 반들반들한 밤이 틈을 보이면 그 틈을 벌려 그들을 요람에서 꺼내야 한다. 다람쥐, 청설모들과 경쟁하며 도토리를 주워야 하고, 풀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는 메뚜기들을 지나쳐 고추를 따고, 고구마를 캐야 한다. 가을은 바쁜 계절이다.


가을에 작가인 우리는 글을 써야 하지만, 읽기를 게을리해서도 안 된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 부지런히 나가서 책을 펴보는 것은 어떨까?


책은 가을바람이 넘겨줄 것이니,

바람에게 독서를 맡기고

나는 하늘이나 볼까 싶다마는...

하늘 보다가 잠깐 눈감은 거야!





그래, 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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