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아홉
햇살의 분별력
안도현
감나무 잎에 내리는 햇살은 감나무 잎사귀만하고요
조릿대 잎에 내리는 햇살은 조릿대 잎사귀만하고요
장닭 볏을 만지는 햇살은 장닭 볏만큼 붉고요
염소 수염을 만지는 햇살은 염소 수염만큼 희고요
여치 날개에 닿으면 햇살은 차르륵 소리를 내고요
잉어 꼬리에 닿으면 햇살은 첨버덩 소리를 내고요
거름더미에 뒹구는 햇살은 거름 냄새가 나고요
오줌통에 빠진 햇살은 오줌 냄새가 나고요
겨울에 햇살은 건들건들 놀다 가고요
여름에 햇살은 쌔빠지게 일하다 가고요
이렇게 보니 햇살은 형체가 없는 물과 같아 보이네요.
어디에 담기냐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
어떤 폭으로 흐르느냐에 따라 다른 소리
배경에 따라 달라지는 색
사람도, 햇살처럼 물처럼
누가 나를 보아주는지에 따라서
맵시도 목소리도 표정도
바뀌는게 아닐까요?
겨울에 햇살은 건들건들 놀다 가고요
여름에 햇살은 쌔빠지게 일하다 가고요
나를 믿고 같이 이해해주는 상사와는
무슨 일이든 해볼 수 있을 것 같고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나를 바보 취급하는 상사 밑에서는
뭐든 하기 싫어지는 이치입니다.
관계는 역시 상대적인 것이네요.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