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으로 주기는 아깝지, 내가 다 먹을 거야
감꽃은 소박하다. 감꽃은 연한 노란색으로 도톰하고, 꽃받침은 아직 연한 초록색으로 부들부들하다. 나는 감꽃과 그 꽃받침이 너무 작고 귀엽게 느껴진다. 감꽃의 꽃받침이 나중에 감꼭지가 된다.
감이 익는 동안 감꼭지는 딱딱해진다. 감이 커서 물러지고 달아지는 동안 꽃받침이었던 감꼭지는 단단하게 홍시를 매달고 있다.
이러한 감꼭지는 마치 어른이 되어 부모가 된 듯하다. 귀여운 감꽃같은 유년시절을 버리고 단단하게 굳어서 감을 매달아 키우며, 바람에 흔들려도 홍시를 놓지 않고, 비가 오면 작은 우산이 되는 감꼭지.
나는 딱딱한 단감은 좋아하지 않는다. 이가 성치 못한 할매처럼 딱딱한 복숭아(딱복)나 감을 싫어한다. 부드럽게 스며들어 주르륵 쏟아질 것 같은 물복이나 홍시를 좋아한다.
감꼭지를 매정하게 톡 떼어놓고 말랑말랑한 홍시를 먹는다. 홍시는 맑은 주홍빛으로 달고 쫀득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 간식, 홍시다. 홍시를 먹을 수 있는 기간은 짧다. 일찍 따면 떫고, 늦게 따면 시다. 많이 먹으면 변비 걸리니 많이 먹으면 안 된다. 제약이 많은 그 간식을 가을에 온전하게 즐겨야한다. 가을에만 먹을 수 있는 곱고 여린 홍시. 요즘은 아이스크림처럼 얼려서 팔지만 그 계절에 먹는 맛과는 다르다.
홍시는 늦가을에야 먹을 수 있다. 홍시를 먹는 때는, 마치 인생의 적절한 시기를 닮았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무르익는 황금기처럼 우리 곁에 오래 머물러 주지 않는다. 단단한 감꼭지처럼 귀여운 유년 시절을 버리고 삶의 무게를 견뎌온 후에야 찾아오는 그 달콤함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기에 더욱 애틋하다. 그 계절의 맛을 온전히 누려야 하는 이유다. 짧아서 아름다운 홍시의 시간, 곧 겨울이 오면 다시 사라질 이 주홍빛 달콤함을 먹으며, 나는 늦가을을 배웅한다. 까치밥 몇 개 남겨놓은 감나무가 흔들린다. 새가 날아와 홍시를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