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 상처받지 않고 사는 법
바르고 참한 사람들을 보면 꾸며낸 것이 아닌지 의심하곤 했다. 어떻게 한결같이 착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삐뚤어진 탓이며 내 시야가 좁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의 저자 채수아 작가님도, 참 선하고 모범이 되는 사람이다. 전직 초등학교 교사인 이력이 참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읽는 내내 생각했다. 심지어 수녀가 되고 싶었다고 생각했다니, 그것도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이얀 손수건 같이 티끌 없으나,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 주는 그런 사람이 채수아 작가님인 것이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면서 마음의 병을 얻고, 오만했다고 인정하면서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삶의 이야기가 진실하게 담겨있는 책이다. 나도 시어머님께 아이들을 맡겨 키우며,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나의 시어머님은 바른말, 고은 말을 쓰시는 분이어서 다행이라고, 모진 말, 거짓말을 하는 작가님의 시어머님을 보며 생각했다. 시어머님이 말을 곱게 하신다고 해서, 아이를 맡긴 입장에서 모든 것이 내 맘 같지는 않았다. 아이가 소화를 못 시킨다고 짚을 달여 먹이는 것이나, 편한 옷을 입힌다고 딸아이에게 내내 운동복만 입히는 것이 나는 불편했다. 내가 키우지 못하니 크게 내색은 못 해도 내가 키우고 싶은 방향으로 키우지 못하는 서러움이 있다. 예쁜 공주님 치마를 사주어도 입히지도 않고, 딸아이도 불편하다고 싫다고 하는 것을 볼 때는 속으로 짜증도 많이 났다. 하지만 이런 일화는 사소한 것임을 읽으며 깨달았다. 채수아 작가님의 시어머님이 딸아이를 데리고 행상을 다녔다고, 겨울에 시린 손을 비비며 행상을 하는 어머님 옆에 있을 딸아이가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하는 일화에서는 같이 화가 났다. 용돈도 듬뿍 드리고, 따뜻한 집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뭐 하러 행상을 나간다는 말인가! 읽는 내가 화가 났는데, 착한 채수아 작가님은 시어머님께서 집에 있기 답답하여 나가는 일이라며 대변해 주는 대목에서는 그만, 책을 덮어버렸다.
아이고. 착한 사람. 나는 속상해지고야 말았다. 맏며느리도 아니고 막내며느리가 이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산 것이 아니라 살아낸 것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모두 건강하고 행복해 보였다. 나만, 나라는 사람 하나만 망가지고 또 망가졌다. 결국 천직으로 여겼던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p53
잠깐 스스로의 화를 식히고 다시 책을 다 읽었다. 시어머님을 모시다가 기어이 몸과 마음이 고장 났다고 인정하고, 분가를 하는 시점에서 나는 속상함이 조금 풀렸다.
되도록 좋은 선택을 하는 하루를 살아야겠다.
p36
상처받은 사람은 또 옆에 있는 사람을 찌른다. 정말 무서운 '이어짐'이다. 그래서 과감히 '질긴 내림'을 끊어낼 용기가 있어야 그 집안의 고통이 막을 내릴 것이다. p84
작가님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좋은 선택을 해나갔고 상처를 끊어내고 성장하였다. 그리고 시어머님의 입장에서도 고생을 인정하는 부분은 좁은 내 마음을 넓혀주었다. 작가님의 시어머님은 몸이 아픈 시아버님과 결혼하여 3남매를 혼자 키우며 억척같이 살았다. 그 고생을 같은 여자 입장에서 풀어보는 것도 내 마음을 풀어주었다.
우리가 세상을 다 바꿀 수는 없다. 대한민국을 다 바꿀 수도 없다. 하지만, 내 주변의 누군가가 덜 억울할 수 있도록 손은 잡아 줄 수는 있다.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 그리고 눈물을 닦아줄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다 그럴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선한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p117
채수아 작가님의 인생을 담은 이 책은, 작가님의 선한 영향력을 이어가고 펼치는 책이었다. 같은 여자 입장에서 시어머니를 잘 모셨던 고되었지만 보람되었던 시간, 그리고 몸과 정신이 망가져 분가한 이후 스스로를 찾아낸 시간, 자꾸 아파 아이들과 같이 보낸 시간을 보상하는 시간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부는 잘 하지만 헛똑똑이'라는 같은 별명을 가진 채수아 작가님의 선한 영향력을 같이 펼쳐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과 같이 읽고 싶은, 참 선한 이야기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