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내 운명

시 특별판

by 설애
끈끈이에 몇 마리 파리가 붙어 있어요 저건 주검도 오점일 거예요 엄마도 끈끈이에 자주 붙었죠 한 발을 떼면 또 다른 발이 들러붙었어요 검버섯 얼룩덜룩한 팔다리를 가난에서 겨우 뜯어내고 나면 골방의 수챗구멍에서 아버지가 기어 나와요 놀라서 뜨거운 물을 끼얹어요

끈끈한 가족 中, 최윤정
출처 : 경상일보(https://www.ksilbo.co.kr)


최윤정 작가는 수필, 소설로 이미 등단 및 수상 이력이 있으며, 이번에 시로 등단하여 3개의 영역을 모두 아우르는 작가가 되었다.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하나씩 보고 있다가, 이 시를 맞닥뜨렸을 때, 나는 멈추었다. 시가 나에게 끈끈하게 달라붙는 기분이 들었다. 끈끈이가 벌레를 잡는 그 물질적인 역할과 끈끈이를 만져본 사람만이 아는 그 기분 나쁜 촉감. 그리고 어디선가 기어 오는 아버지라는 이미지. 이 문장들에 사로 잡힌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이 시라면 내가 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느낌이 수챗구멍의 아버지처럼 기어 나오다가, 뜨거운 물을 끼얹을 새도 없이 감탄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쓴 것과 비교할 수도 없으니, 내가 느낀 것은 자괴감이나 한탄이라기보다, 감탄이었던 것이다.


우와, 이게 시구나


그렇게 순수하게 시를 보고 감탄하게 했으니,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진짜 좋은 것은 같이 봐야 하니까.

시를 쓰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시란 무엇인가, 나는 왜 쓰는가.

이런 끈적한 질문들은 모두 날려버리고, 그냥 끈끈이에게 잡힌 파리처럼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나는 시라는 끈끈이에 붙은 파리처럼 묶인 것이다.


그러니 저항을 그만하고, 그냥 쓰자.


이 시가 나를 시의 어떤 세계로 보내버렸다. 부족하면 어떻고, 등단이 되지 않으면 어떠리. 시를 읽는 것은 이렇게 감탄하는 일이고, 나는 시가 쓰고 싶어지는 것을. 운명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대체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시는 내 운명.


설애가 설애의 시 쓰기의 즐거움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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