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겨울은 춥다. 겨울의 발걸음은 집으로 향한다. 겨울에는 쉽게 나서지 못한다. 손과 발은 쉽게 차가워지고, 바닥은 미끄럽다. 추위를 막기 위해 입은 옷은 점점 두꺼워지고, 빠릿빠릿 움직이지 못하는 둔한 발걸음은 뒤뚱거린다. 그래서 겨울의 나는 집에 있고 싶다.
돌아간다. 집으로.
그리고 집으로 향하는 걸음은 나를 과거로 이끈다.
몸은 앞으로 향하고, 마음은 뒤로 간다. 그런 불균형의 상태는 딱, 내 겨울의 상태다. 쉽게 도망가지 못하고, 천천히 걸어가며 되새기는 마음. 겨울은 고등학교 창가로 나를 이끌어 설애라는 필명으로 나를 가둔다. 나는 왜 그 시간과 공간에 자꾸 갇히는 걸까? 그래서 겨울의 어떤 주제를 내놓아도 모두 같은 결말을 내도록 하는 걸까. 나의 고등학교 겨울. 그 겨울은 어떤 겨울보다 강력해서, 모든 겨울을 압도한다. 나는 자꾸 끌려간다.
나는 공부를 잘했다. 고등학교 내내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다. 서울대에 합격했다. 그 하나의 합격이 그 후의 인생을 잘 인도했다. 합격하기 1년 전 겨울로 가보자. 고 3이 되는 겨울의 기억은 마치 눈으로 덮인 하얀 도화지처럼 깨끗하다. 기숙사에 사는데, 식비를 제때 내주지 않아서 식비를 내라고 하는 여사님들을 피해 며칠 밥을 굶기도 했다. 밥을 먹다가 눈물이 나와서 체할 뻔하기도, 체하기도 했다. 그래도 공부를 잘한다고 선생님들께서 교사용 문제집을 건네주셨다. 그리고 가끔 공부 열심히 하라고 봉투도 받았다. 장학금이기도 했고,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가난을 들킨 채 때로 숨죽이며, 때로 모르는 척 살아갔다. 그때의 심정은 그 눈, 그 눈처럼 나를 덮고 나를 차갑게 만들고, 나를 하얗게 만들었다. 내가 받은 것은 동정이기도 했고, 격려이기도 했고, 관심이기도 했고, 구원이기도 했다.
어느 날 아빠가 와서 돈을 달라고 했다. 남동생이 미술 대회에 나가는데, 준비물 살 돈이 없다고 했다. 나는 생리대를 사기 위해 아껴두었던 만원을 주었다. 그런 계절이었다. 숨을 죽이며, 남들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깊은 가난에 두 발이 묶인 채, 공부할 수밖에 없었던. 내 숨이 추위에 김으로 흩어지는 것처럼, 내 숨통이 그렇게 흩어졌으면 했던 시절. 나는 가난해서 공부했고, 운이 좋게도 높은 곳으로 가는 사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갔다. 대학을 간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에, 그 후에 내가 겪었던 고생들도 많았지만, 이 시절만큼 막막하지는 않았다. 고등학생으로 공부 외에 아무것도 못하는 발이 묶인 막막함.
겨울은 그 시절을 데려온다. 그래서 차가운 공기도, 눈도 싫다.
집으로 간다. 그리고 자꾸 뒤로 가는 마음을 막아본다.
겨울이 이제는 내내 슬프지는 않다. 하지만 이 겨울이 다른 계절보다는 춥다. 내게는 그 추위를 날릴 머리가 얼어붙은 작고 반짝이는 얼음 조각들 같은 추억과 컵을 덥혀 한 잔의 커피도 쉽게 식지 않도록 하는 소중한 사람이 있다. 겨울도 한 가지 얼굴을 가진 것이 아님을 이제 겨우 안다.
고백, 그리고 Go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