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계란을 삶는 법

껍질 속에 든 고백

by 시트러스

1. 껍질부터 어긋난 아침

'깐 달걀처럼 매끈매끈한'

적어도 우리 집 식탁에서는, 저 말이 현실이 된 적이 없다.


"엄마, 계란이 왜 이래요?"

"뿌서졌어요?"

"아니야... 썩었어요?"


깐 달걀처럼 뿌서진, 썩은 표정을 지은 나는 침통하게 대답했다.

"주는 대로 먹어."


남들은 쉽게 홀랑홀랑 까는 달걀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런 온전한 모양으로 나오는 걸까?


그날도 완전식품 달걀을 완벽하게 살점을 다 떼냈다. 흰자처럼 울퉁불퉁한 기분으로 출근했다.

아침 교실은 난방이 돌아가도 어딘가 서늘했다.

이 계절엔 다들 조금씩 마음이 미끄러진다.


2. 겨울의 온도

1교시 3학년 8반.

졸업이 얼마 안 남았기에, 당시 수업 시간은 모두 자습으로 채워졌다.

노트북을 들고 빈 책상에 가서 앉았다.

"선생님, 이거 드실래요?" 진영이가 싱글벙글, 젤리를 쓱 내밀었다.

"야, 너는 수업 시간에... 더 줘봐."

손을 툭 쳤더니 젤리가 와르르 쏟아졌다. 아이들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동이 났다.

"아이고, 다 먹었네. 이제 자리로 가."


진영이는 마치 '여기 좀 앉아봐'라는 말을 들은 듯, 자연스럽게 옆에 앉았다.

아, 나 바쁜데... 계란 삶는 100가지 비법 검색해야 한다고!

"선생님, 내일모레가 무슨 날인지 아세요?"

"음... 니 자리로 돌아가는 날?"

주위 여자애들이 킥킥거리고, 멀리서 또 지혁이랑 남자애들이 드르륵, 의자를 당겨 와 앉았다.

"아니, 오지 말라고. 혼자 있고 싶다고."

"선생님, 내일모레 저희 아버지 기일이에요."

갑작스러운 고백이었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어른에게 건네진, 한 아이의 조용한 고백.


3. 예고 없는 말

잠깐 다들 멈췄다.

나도 모르게 옆의 진영이 얼굴을 들여다봤다.

"저희 아버지가 이때, 이틀 후 돌아가셔가지고..."

녀석은 싱글거리며 말하는데 말문이 막혔다.

마우스를 달각거리던 손을 놓고, 진영이 어깨를 토닥였다.


"어... 진영이, 그랬구나. 선생님이 몰랐어."

"샘, 괜찮아요. 하도 어릴 때 돌아가셔서 저 슬프지도 않았어요."


어느새 주변을 둘러싼 남자애들이 방청객처럼 "어어..." 하는 소리만 남기고,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 진영이 멋있게 잘 컸네."

진영이는 정말로 멋있게 잘 컸다. 전교 부회장도 하고, 운동도 공부도 열심히 한다.

멀끔하게 잘 생긴 이 아이는 복도에서 날 보면 슬라이딩이 인사인 줄 안다.

그때는 그저 장난 심한 아이겠거니 했는데...


4. 껍질에 남은 기억

내 노트북을 힐끔 보더니 진영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쾌활한 웃음소리가 아직 찬 공기 속으로 퍼졌다.

"선생님, 저는 계란을 잘 못 먹어요." 뭔가 불안한 문장이다.

"저희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같이 계란을 먹었거든요? 좋아하는데, 못 먹겠어."

주변 아이들을 돌아보며 해맑게 웃었다. 네 웃음이 선생님한테는 좀 무겁다, 진영아.


삶은 때로 우리를 예상치 못한 길로 데려간다.

모르는 사이, 내 평범한 아침의 한 장면이 누군가의 슬픔 속 조각이 되기도 한다.

그걸 그제야 교실 빈자리에 앉아 있던 어른 하나가 배웠다.

난방이 돌기 시작한 교실에서, 손이 식은 채로.


종이 치자 당연하다는 듯, 시끌벅적 내 노트북을 챙겨드는 진영이와 아이들.

이 아이를 철없는 그 모습으로,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얼마간 이뤄질 수 없는 소망을 빌어본다.


5. 예쁜 것만 골라서

"진영아, 잠깐만 이리 와 볼래."

1교시에 먹지 못한, 집에서 가져온 달걀을 조심스레 내밀었다.

"으하하, 샘 이거 머에요?"

"웃지 마라. 그래도 예쁜 것만 골라서 가져온 거야."

"저 계란 진짜 좋아해요. 감사합니다." 성격 좋은 녀석은 꾸벅 인사한 뒤 한 입에 넣었다.


저렇게 예쁘게 키우기까지, 진영이 어머니도, 멀리서 아버지도 얼마나 마음을 쓰셨을까.

나는 잠시 아이를 눈에 담았다.

"매끈매끈하다, 매끈매끈해." 이상한 유행가를 부르며 나가는 뒷모습이,

영락없이 그냥 또래 아이들 같아 괜히 내가 뿌듯하고, 좀 더 마음이 저릿했다.


6. 겨울에 듣는 말들

교사로서 이 겨울에 더 많이 들여다본 것은 성적표보다 이런 고백들이다.

누군가는 아버지의 부재를 담담히 꺼낸다.

어떤 아이는 몇 반의 누구를 좋아하며, 또 다른 아이는 영어 시험을 망쳐서 울었다고.


그들은 내게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다.

나는 해결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듣는 일에는 자주 전부를 쓴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란,

단단한 껍질 안의 말간 알맹이가 상하지 않게 다루는 일과 비슷하다.

방법은 잘 모르겠다. 다만 물의 온도와 누군가의 마음에 대해 오래 생각한다.

교무실 문이 다시 열렸다. 지혁이었다.

"쌤! 진영이한테만 계란 줬다면서요!"


그리고 계란 브로커, 아니 고백 브로커가 있는 한,

겨울에는 아무래도 계란을 더 자주 삶게 된다.




[이 글이 뜻밖에도 구글에 피드되었습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