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백삼십오
공원묘지에 갔는데요
바퀴벌레처럼 기어갔는데요
땅 속으로 차오르는 달을 보았는데요
하늘에는 어둠에게 반쯤 물어뜯긴 낮달이 떠 있었는데요
줄을 서 있는 무덤이 반달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중략)
살아서 월세방 전전하다 죽어서 봉분 하나 차지하는데요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는데요
문이 안에서 철꺽 잠겨버렸는데요
간수는 자물쇠를 채우고 뒤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는데요
사방은 주검을 껴안은 무덤인데요
무덤을 갔는데요 中, 전다형
묘는 죽은 후의 집이겠죠.
그 묘를 땅에서 솟아오른 반달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렇게 표현하니 조금은 푸근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또 문을 잠그고 가버렸다니, 또 난감하고 속상하기도 합니다.
어제 소개한 것처럼, 결국 흙이 되고, 바람이 되어 버린다면, 조금 덜 속상할까요.
전다형 시인의 시는 어딘가, 기묘하면서도 상황을 받아들이게 하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반달 같은 곳에서 갇히는 것이 죽음이라면,
월세를 안 내고 살아도 전전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게 죽음이라면,
모든 것이 그렇듯이 좋기도 나쁘기도 한 것이 죽음이라면,
어쨌든 죽음이니까.
헤르만 헤세의 말대로 "오늘은 당장은 아니고 나중에!"를 택하겠습니다.
그리고 문을 밖에서 잘 잠그고 다니는 삶을 감사하게 살겠습니다.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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