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백오십사
감 꽃
김준태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출처 : 국어시간에 시 읽기 1, 배창환 엮음, p184
무언가를 세어가며 지나가는 날들을 돌아보는 김준태 시인의 시는 발랄하면서도 무겁습니다.
감 꽃은 노랗게 피어나는 꽃입니다. 그 작은 꽃을 세는 것은 시인의 어린 시절의 일입니다. 그리고는 감 꽃이 곧장 죽은 병사의 머리로 변합니다. 그것도 잠시, 그 죽음이 돈으로 바뀝니다. 세는 대상은 그렇게 바뀌니 다음에는 무엇을 셀까 물어보는 시인에게 저는 뭐라 답해야 할까요?
지금 저는 돈도 세지만, 끝없이 시간을 셉니다. 빚을 갚아가던 시기에는 남은 빚과 그 빚이 청산될 시간을 세었습니다. 빚을 갚고 나서는 은퇴 후에 살아갈 날들과 필요한 돈을 셉니다. 삶의 기준과 목표가 자꾸만 돈과 시간에 묶입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최소한 아이들에게는 제가 돈 때문에 겪었던 어려움을 다시 겪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도 큽니다. 감 꽃받침은 감꼭지가 됩니다. 그리고 감의 작은 우산이 됩니다. 그렇게 감 꽃받침이 감꼭지가 되는 것처럼 저는 아이들의 큰 우산이 되고 싶어서 돈도, 시간도 자꾸 셉니다.
돈과 시간 말고, 무엇을 세어야 좋을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문득, 한 사람이 떠오릅니다. 그 사람은 읽고 싶은 책을 정리해서 리스트로 만들어 놓고 하나씩 지우는 것이 즐겁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처럼 좋아하는 것들을 줄 세워 놓고 하나씩 해나가며 세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또 있을까요? 세어야 할 것들과 세는 좋은 방법이...
아, 제가 세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시를 소개하는 날들이네요. 벌써 이백육십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돈과 시간 말고, 이 시 한 잔을 셀 수 있어서요. 이 시 한 잔이, 누군가의 하루에 조금이라도 닿을 수 있다면 떨어진 감 꽃을 세는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셀 수 없이 기쁘겠네요.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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