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공간

나만의 공간에 금이 갈 때

by 스노리

우리가 오롯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공간은 깨지기 쉬운 유리 공간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게 되면 나만의 유리 공간은 쩍쩍 갈라지다가 부서져 버린다. 아이가 크고 남편도 대면대면 해지다 보면 부서진 조각들이 모이고 갈라진 공간이 조금씩 붙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공간은 위태위태 해 언제 또 금이 가고 부서져 내릴지 모른다.

남편이 이직을 하면서 3개월의 긴 휴가가 생겼다. 출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맘껏 아침 운동을 하고 좋아하는 스포츠 경기와 드라마를 본다. 저녁을 간단히 먹는 대신 점심에 공을 들이는 남편은 먹고 싶은 것도 많고 맛집 찾기도 열심이다.

대학생 아들도 귀국해 긴 여름 학기를 한국에서 보낸다. 삐쩍 마른 꼴로 공항에서 나오면 살찌기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집안의 미세 농도와 데시벨도 올라간다.

나의 공간에 다시금 쩍쩍 금이 가기 시작한다.

3개월은 긴 시간이기도 하지만 금방 지나갈 것이다. 남편은 좀처럼 오지 않을 이 시간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다.


"퀘벡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볼까 해"


"나도?"

"당연하지. 맛난 거 먹고 멋진 거 같이 보자는 거지. 나 혼자 가겠냐?"

혼자가도 되는데, 따로따로 한 달 살기 가는 건 어때? 물론 속마음이다.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유럽의 담벼락과 역사의 향이 가득한 좁은 골목골목을 사랑한다. 캐나다는 가본 적 없지만 미국과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그다지 매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미국 마니아인 남편은 처음에는 미국 중부를 계획했지만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과 까탈스럽게 구는 입국 정책에 굳이 하며 미국에서 가까운 캐나다로 경로를 변경한다.

몬트리올과 퀘벡 시티에서 한 달 동안 살기로 결정한다.

캐나다에 별 호응이 없는 나에게, 퀘벡은 거의 프랑스라고, 유럽에 가깝다며 퀘벡의 역사를 시작하려 한다.


"1600년대 프랑스가"

"어 갈게"

바로 설득당해 준다.

남편에게 어떤 것에 대해 물어보면 그것이 생긴 원인부터 시작해 의례 첫 번째, 두 번째 –다행히 세 번째는 드물다- 근거를 들고, 돌아 돌아 그것이 무엇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질문을 던져 놓고 딴생각하기 일쑤다.

다음엔 아들을 꼬시고 있다. 미국에 돌아가기 전 캐나다에 같이 가자고, 혼자 여기서 뭐 먹을 거냐며 맛있는 거 잔뜩 사준다며 열심히 설득한다. 하지만 아들은 쉽지 않다. 오랜만에 한국에 나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고 부모님이 없는 자기만의 공간에 있을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결국 날짜를 늦춰 학기 시작하기 1주일 전으로 날짜를 세팅해 아들은 몬트리올에서 1주일만 같이 지내기로 하고 퀘벡 한 달 살기를 계획한다.

항상 여행 준비의 계획은 내 담당이다. 여행책을 사고 블로그들을 탐독한 후 갈 곳을 정하고 위치를 선점해 호텔을 잡는다. 구글 지도를 이용해 갈 곳들을 저장하고 역의 위치와 호텔 동선을 이용해 여행 계획을 짠다.

레스토랑이나 맛집은 구글 평점을 보고 인터넷에서 리뷰를 찾아 장소를 저장한 후 여행 동선에 가까운 곳을 후보지로 잡는다. 하지만 음식점에 있어서는 현지에서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지인들이 바글거리는 맛있어 보이는 곳으로 간다.

실패하는 법이 없다.


이번 여행은 그렇게 자세히 계획하지 않는다. 어차피 한 곳에 오래 머물 예정이라 세세한 일정은 필요 없다. 슬로 라이프를 추구하러 가는 거라 신경 쓰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남편이 여행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숙소를 서치하고 아마존에서 지도가 자세히 나온 여행 가이드 북도 주문한다.

게다가 퀘벡이 배경인 영화도 찾아보고 판타지물은 취향이 아니라며 거들떠보지 않더니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도깨비를 보기 시작한다.


이제는 한 달 동안 우리의 공간에서 서로의 시간을 공유해야 한다. 주위에 부서져 내린 날카로운 유리 조각들을 주워 담고, 상대의 모습을 바라보고 나의 모습을 비춰 줄 새로운 공간을 쌓기 시작한다. 우리의 공간을 유리처럼 부서지지 않을 견고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우리의 한 달 살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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