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Titanic. The Human Story

by 스노리

퀘벡 역사와 원주민들의 삶, 그리고 퀘벡의 과거와 근대 문명에 대한 전시를 보기 위해 올드 포트 강변도로에 있는 Musée de La Civilisation 퀘벡 문명박물관에 간다.

전시관 앞에 TITANIC이라고 쓰인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고 그 옆에는 레오가 케이트를 백허그하던 뱃머리가 놓여 있다. 전시관 1층에서는 Titanic. The Human Story ‘타이타닉. 휴먼 스토리’가 전시 중이고 오른쪽 전시관은 상설 전시, 2층과 3층에서 퀘벡 문명에 관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입장료에 $4만 더 내면 타이타닉 전시도 같이 볼 수 있다고 해서 별 기대 없이 티켓을 구매했는데 결론적으로 타이타닉 전시만 기억에 남는다.


타이타닉 전시실에 입장하자 옷에 스티커를 붙여 주고 헤드셋을 나눠 준다. 헤드셋에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을 들으며 승객들과 함께 타이타닉호의 승선을 시작한다.


타이타닉이 침몰한 밤처럼 어두운 전시관에서는 살아남은 자들과 죽은 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빙산을 눈앞에서 발견하는 급박했던 사고의 순간을 애니메이션을 통해 짧게 보여 주긴 하지만 어떻게 사고가 나고 몇 명이 죽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타이타닉이라는 공간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승객과 승무원의 개인 소지품과 보석, 의복뿐만 아니라 그들이 실제 착용했던 구명조끼와 물에 빠진 사람들에게 던져 주었던 튜브, 그리고 타이타닉의 잔해를 통해 일상적인 그들의 삶이, 그날 밤 어떻게 부서지고 가라앉았는지 보여 준다. 고향의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와 탑승하기 전 가족들과 찍은 사진들을 통해 계급과 불평등이라는 사회 구조 속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꾸던 승객과 승무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구명조끼는 충분했지만 차가운 바다의 온도를 높여주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이 구명조끼를 착용한 채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일등석부터 이등석, 삼등석으로 분류된 각각의 부스에는 그들의 침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방과 그들이 사용했던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등석 선실의 화려한 가구, 승객들이 입었던 목욕 가운, 금빛 장식이 빛나는 식기류와 삼등석의 칙칙한 옷조각, 초라한 식기들이 대비되어 타이타닉이라는 하나의 계급사회를 보고 있는 듯했다.


일등석 스위트, 이등석 선실, 삼등석 선실

일등석의 60%에 달하는 생존율과는 달리 승객의 75%가 사망한 삼등석 승객들에 대한 전시관에는 초라하고 비좁은 선실이 배에 있던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있고 그곳에서 생활한 승객들의 소지품, 낡아빠진 의복이 주인을 대신해 유리관 안에 누워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의 새로운 삶에 들떠 있던 영국, 스칸디나비아와 동유럽, 그리고 중동에서 온 노동계급의 이민자였던 그들의 꿈은 항해를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북대서양의 차가운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삼등석의 이민자 중에는 중국인들도 있다. 8명이 배에 타 6명이 살아남은 아주 높은 비율의 생존율을 보여 준다. 하지만 일등석에서 구출된 남자들도 여자와 아이들을 버리고 살아남았다고 비난받는 와중에 이들에 대한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미국에 도착한 즉시 아시아인 이민 배제법에 따라 쿠바행 배에 선원으로 태워져 쫓겨나듯 떠났다고 한다.

그들이 24시간 머문 꿈의 땅에는 자신들의 머그샷 같은 초상만이 남아있다.


34%가 생존한 889명의 타이타닉의 승무원 사이에서도 계급은 존재했다. 같은 승무원이지만 일등석이나 객실을 담당한 승무원들은 많은 수가 살아남았지만, 엔진과 연료실의 Black Gang으로 불리는 파이어맨들 대부분은 사망했다.


보일러실에서 석탄을 다루는 Black Gang 선원들

승객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조명과 전기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석탄을 화로에 넣고 엔진에 기름을 칠하는 보일러실의 선원들은 끝까지 기관실을 지키다가 배의 가장 아래쪽에서 사라져 버렸다.

전시에서는 이들을 어둠 속에서 타이타닉의 심장을 지킨 영웅들로 묘사하지만, 배의 가장 어두운 하부에서 가장 먼저 들어오는 물살에 떠내려간, 고된 노동을 하다가 떠난 사람들이다.


전시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진과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티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결혼한 엔지니어 Joseph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 차별과 불이익을 받자 가족과 새로운 삶을 꿈꾸며 타이타닉에 탑승하지만, 임신한 아내와 아이들을 구명보트에 태우고 자신은 끝내 사라져 버렸다.

몇 주 후 홀로 아이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돌아올 수밖에 없던 아내가 칠흑 같은 밤바다에서 떠올렸을 남편의 마지막 모습은 아마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Joseph Laroche와 가족 (왼쪽), Alfred Nourney (오른쪽)

Alfred Nourney는 독일인으로 고향의 여성을 임신시키고 도망가기 위해 타이타닉에 승선한 후, 귀족을 사칭해 일등석으로 업그레이드된다. 당시의 느슨한 신분 증명을 이용해 일등석 승객들과 과감하게 사교 활동을 하면서 첫 번째로 내려진 구명보트를 타고 살아남았다고 하니 타이타닉이라는 거대한 계급사회의 신분과 생존의 아이러니를 보여 주는 인물이다.


배에 탄 엄마와 아이 셋 모두 구조된 가족도 있다. 이모와 이모부는 희생되었지만 구출되면서 벗겨진 아이의 신발이 주인을 살리고 유명을 달리한 듯 고개를 떨구고 누워 있다.


마지막 전시관에는 고향의 가족에게 부푼 꿈과 사랑을 써 내려간 타이타닉의 마지막 엽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침몰 전 온전히 육상 우편으로 가족에게 전해진 엽서, 시신의 옷 속에서 젖은 채로 발견된 엽서, 주인 잃은 트렁크와 유품에서 나온 엽서들은 건조되고 복원되어 타이타닉의 역사 속에 중요한 마지막 편지로 남게 되었다.

누군가는 배가 가라앉을 거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배의 웅장함을 칭찬하며 자랑하고 있고, 다른 이는 옆에서 아이가 잘 자고 있다는 평온한 순간을 글로 써 내려간다. 일을 찾을 거라는 희망에 가득 찬 글, 곧 다 같이 만날 것을 기대하는 편지의 글들이, 그들이 꿈꾸던 미래와 평온했던 시간을 더욱 잔인한 순간으로 만들고 있다.

엽서의 글들이 이루지 못한 그들의 꿈으로 다가와 내 마음도 어두운 밤바다에 빠져 버린다.


맞은편 벽에는 타이타닉에 승선했던,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들이 모여 있다. 계층도 차별도 없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그들이 타이타닉의 초상화가 되어 차가운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전시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문명전시관 앞의 표지판 기둥들에 스티커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다. 타이타닉 전시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옷에 붙여 주던 스티커를 이곳 폴대에 방문 인증하듯 모두 붙여 놓았다.

우리도 덜 빽빽한 옆의 기둥에 스티커를 붙인다.

세월호의 노란 리본이 가득한 희생자의 탑처럼 색색의 동그란 스티커가 희생자의 넋을 기리듯 전시관 앞에 슬픔의 벽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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