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ella 카스텔라
오븐에 몇 번을 들어가 화기를 견디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누렇게 변한 원목틀 사이로 폭신폭신한 카스텔라가 구워지면, 밀가루 날리는 뿌연 주방처럼 희미한 기억 속에 초록의 따스함이 떠 오른다.
엄마의 오븐은 초록색 원형의 에어 프라이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사라져 존재의 기억도 없는 오븐이 떠 오른 것은 마들렌에 적셔진 차의 첫 모금처럼 뇌의 한 감각을 깨운 갓 꺼낸 카스텔라에서 피어나는 촉촉한 연기의 맛 때문이었다.
5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케이크를 한껏 먹게 해 주고 싶었던 엄마는 그 당시 흔하지 않은 오븐을 샀다.
첫 오븐의 역할은 카스텔라를 만들고 또 카스텔라를 만들고 역시 카스텔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수년 동안 카스텔라만 만드는 것으로 그의 역할은 끝났고 엄마의 첫 오븐이자 마지막 오븐은 소리 없이 퇴장해 버렸다.
무슨 재료를 썼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카스텔라를 만드는 엄마의 모습은 기억나지 않지만 오븐 틀에서 뒤집혀 퍽 하고 던져진, 무너질 듯 보이는 빵이 찰지게 쟁반에 안착하던 모습은 뿌연 연기 속에 순간의 컷처럼 뇌의 어느 자리에 박혀있었나 보다.
연약해 보이는 촉촉한 빵이 스펀지처럼 유연하게 담겨 입맛 돋우는 김을 뿜어내는 순간이 마음속에 찍힌 것이다.
언제나처럼 주방에서 무엇인가를 끓이고, 무엇인가를 다지고 있는 엄마에게 물어본다.
“옛날에 카스텔라 만들던 오븐은 위아래 열선이 깔려있었나? 온도는 몇 도로 구웠어?”
“열선이 밑에 깔려있었나? 온도를 조절할 수 있었나? 모르겠네. 이모가 먼저 사서 빵을 구워 갖고 왔는데 니들이 엄청나게 잘 먹더라. 그래서 나도 산 거다”
“뭐 넣고 만들었어?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나?”
“계란노른자랑 흰자를 분리해서 흰자는 거품기로 흘러내리지 않을 때까지 쳐대 갔고 섞어서 설탕 넣고 구웠지”
“밀가루는 얼마큼 넣었어? 버터는? 버터 없으면 식용유라도 조금 넣지 않았어?”
“모르겠는데? 안 넣었을걸? 어쨌든 만들어 놓으면 너네들 달려들어서 엄청 잘 먹었다”
엄마의 기억 속에도 만드는 과정과 핸드 믹서를 대신해 족히 30분은 거품 내었을 고단한 팔의 기억은 사라지고 식기도 전에 달려들어 깔깔대며 한 판을 끝장내버렸을 자식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만 남았다.
오븐에 딸려 온 레시피 책에는 카스텔라 외에 다른 빵과 쿠키를 만들 수 있는 방법과 음식 사진이 있었다. 오븐을 사용해 만들 수 있었을 다른 제빵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버려진 책이었지만, 나의 눈을 즐겁게 하고 상상력을 자극했던 작은 문고본 같은 책을 한동안 들고 다녔다.
다른 사진들은 좀처럼 기억나지 않지만, 과일이 잔뜩 올라간 도넛 모양의 리스 케이크는 픽토리얼 메모리처럼 눈앞에 선명하게 찍혀 있다. 하얀 글레이즈가 흘러내리는 빵 위에 블루베리인지 포도인지 모르겠지만 보라색 베리류와 딸기 그리고 타임 같은 잎으로 장식된 화려한 케이크를 눈 빠지게 쳐다보고 무슨 맛일까 궁금해하며 혀에 한 조각을 올려놓고 상큼한 과일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기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알록달록하게 장식되어 있던 케이크가 오랫동안 미지의 맛에 대한 갈증으로 남아있다가 제빵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르겠다.
카스텔라 페이지의 레시피도 따르지 않고 엄마 나름의 레시피를 구축하면서 쓸모없어진 책은 오븐과 함께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거리와 시장에 카스텔라가 잔뜩 진열된 빵집이 생기면서 더 이상 팔 떨어지는 수고를 하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바닐라 향이 돌며 반듯하게 정돈된 카스텔라가 비린 달걀 냄새나는 투박한 카스텔라를 밀어내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집 근처 리치먼드 제과점이 들어오면서 세련되고 다양한 빵과 케이크의 신세계가 열렸고 카스텔라는 점차 순위에 끼지도 못하게 되었다.
가끔 엄마를 위해 카스텔라를 굽는다. 밀가루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 그런지 제일 속이 편하다고 말하며 만들어 갈 때마다 환영하신다. 내가 굽는 빵 중에서 제일 인기 없는 케이크이지만 엄마에게는 1위인 케이크이다.
베이킹파우더의 도움 없이 달걀과 공기가 부대끼며 볼륨을 만들고 밀도를 책임져 많이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촉촉한 식감이 넘기기 편해서인 것 같다. 아니면 입 안에서 부서지는 빵 부스러기가 엄마에게도 따스하게 올라오는 그리움의 맛으로 전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카스텔라는 단순한 재료를 사용하여 만들기는 어렵지 않지만, 한치라도 자기의 비위를 거스르면 쉽게 주저앉아 토라져 버리는 깐깐한 케이크이다.
원하는 모양이 나올 때까지 휘핑하지 않고, 밀가루와 수다를 떨며 과도하게 섞으면 이중인격자처럼 인격을 분리해 버린다. 게다가 궁금한 마음에 오븐 문을 열어 보며 옆에서 기웃거린다든지 기다리지 못하고 땡 하는 소리와 함께 급하게 케이크를 꺼내면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이 불같이 화를 내며 무너져 내린다.
굳이 나무틀을 쓰지 않아도 원하는 텍스쳐를 만들 수 있지만 차가운 금속에 닿는 것이 싫은지 나무틀을 쓰면 성격도 유해져 열을 고르고 느리게 퍼뜨려 속을 촉촉하게 간직하고 조밀한 속살을 유지해 준다.
나무틀에 유산지를 깔고 바닥에 굵은 설탕을 뿌려 캐러멜 라이즈 시키면 표면에 진한 갈색빛이 돌며 촉촉한 속살을 더 하얗게 만든다.
견고한 입자가 촉촉하게 탱글 거리면 스펀지 같은 텍스쳐의 카스텔라가 입 안에 머금고 음미할 새도 없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달걀을 분리해 따로따로 휘핑하는 별립법과 흰자와 노른자를 함께 휘핑하는 공립법이 있다. 대만식 대왕 카스텔라 같은 폭신하고 흔들리는 스펀지케이크를 좋아한다면 별립법으로 만든다.
나는 견고한 입자와 조밀하고 촉촉한 식감을 위해 나가사키 카스텔라와 같은 공립법으로 만든다. -사실 분리해서 휘핑하고 다시 합치는 노고를 하고 싶지 않다-
달걀을 뜨거운 물에 올려 설탕을 완전히 녹이고 휘핑해 밀가루를 섞으면 기포가 안정되어 견고한 카스텔라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분리될 수 있어 초보자는 별립법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핸드믹서로 폭풍처럼 휘핑한 후에는 속도를 한참 줄여 부드럽게 달래 주어야 한다. 반죽이 끝나고 틀에 부은 후에도 이쑤시개를 왔다 갔다가 하면서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고운 카스텔라의 입자 대신 눈물을 담은 큰 구멍들을 남긴다.
오븐은 예열해 두고 반죽이 준비되면 바로 넣어 준다. 틀에 넣어 두고 홀로 두었다가는 가볍고 폭신폭신함 대신 무거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버린다.
카스텔라 만들기
8"x 4"x 3.5"(20 cmx10 cmx8.5 cm) 나무틀
4 달걀, 1 달걀노른자, 100g 박력분, 115g 설탕, 30g 우유, 15g 무염 버터, 15g 식물성 오일, 20g 꿀, 10g 럼주 (15g 맛술로 대체 가능), 1/4 tsp 소금
1. 나무틀에 유산지를 재단해 깔아 준다.
2. 달걀에 설탕을 넣고 거품기로 가볍게 섞어 준다.
3. 뜨거운 물을 넣은 볼 위에 2의 볼을 올리고 핸드믹서 중속으로 휘핑한다.
4. 달걀을 손으로 만졌을 때 설탕의 입자가 느껴지지 않고 따뜻해질 때까지 휘핑하고 중탕에서 내려 준다. (온도계가 있다면 40°C 정도)
5. 작은 볼에 우유, 버터, 식물성 오일, 꿀, 럼주를 넣고 중탕한 뜨거운 물에 올려 둔다. (나중에 전자레인지에 30초 돌려도 된다)
6. 중탕에서 내린 달걀을 핸드믹서의 고속으로 색이 뽀얗게 되고 볼륨이 올라올 때까지 휘핑한다.
7. 핸드믹서를 들어 올리고 끝에서 나온 반죽으로 리본을 그린 후, 리본이 30초 남아있다가 사라질 정도면 된다.
8. 핸드믹서를 저속으로 낮추고 2분 정도 휘핑해 기포를 정리한다.
9. 밀가루를 체 쳐서 넣고 주걱으로 살살 흔들면서 밀가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빠르게 섞는다.
10. 5의 우유 믹스처에 9의 반죽을 한 스푼 넣고 주걱으로 부드럽게 섞는다.
11. 섞은 반죽을 전체 반죽에 넣고 주걱으로 재빨리 섞는다.
12. 준비된 틀에 붓고 이쑤시개로 왔다 갔다가 하면서 기포를 정리하고 예열된 오븐에 바로 넣는다.
13. 180도 예열된 오븐에서 10분 굽고 160도로 낮춘 후 50분 굽는다. (다 구워지면 오븐에 5분 정도 그대로 두었다가 꺼낸다)
14. 유산지를 깔고 브러시로 버터를 발라 준다.
15. 오븐에서 꺼낸 카스텔라 위에 버터 바른 유산지를 올리고 뒤집어 준다.
16. 틀을 분리하고 유산지를 제거하고 완전히 식힌 후 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