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용품 정리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봤다. 영화 소품으로 등장한 수많은 '육아 템'들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배우나 스토리보다 육아와 관련된 상품을 관심 있게 봤다. 영화를 보며 이런 나를 발견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가 되었구나...'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영화 속에는 국민 유모차, 국민 장난감 등 육아를 도와줄 수 있는 제품들이 한가득이었다.
육아용품의 수명은 짧았다. 아기는 날마다 쑥쑥 자랐기 때문이다. 생후 두 달 정도가 지나니 신생아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는 맞지 않았다. 선물 받았던 옷들은 크기가 안 맞아 제때에 못 입힌 것들도 많았다. 부피가 큰 장난감이 늘면서 집이 점점 좁게 느껴졌다. 아기가 생후 18개월쯤 되니 집이 육아용품으로 가득 찼다. 정리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아기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물건부터 치우기 시작했다.
"oo로 오시면 됩니다."
아기가 생후 10개월쯤 되었을 때 호기심 삼아 중고거래 사이트 문을 두드렸다. 아기에게 두어 번 입혔던 두꺼운 우주복을 내놨다. 정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내놨다. 하지만 계절이 맞지 않은 탓인지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중고 사이트에 물건을 올린 것을 잊고 있었을 때 구매를 원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출산을 곧 앞둔 임산부였다. 헌 옷이지만 새 옷을 산 것처럼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보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집 정리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그날의 좋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본격적으로 중고거래 사이트에 물건을 올리기 시작했다.
집에는 안 쓰는 물건이 정말 많았다. 소형 기저귀, 신생아용 아기 띠, 분유 포트, 이유식 그릇 등 아기가 자랄수록 물건들이 많이 생겼다.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더 이상 끌어안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동안 치울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집안에 쌓아놓았다. 청소를 해도 집이 지저분한 느낌이 들었다. 팔 물건 목록들을 정리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사는 습관도 반성이 되었다. 물건을 팔기 위해 구매자와 약속 시간, 장소를 맞춰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다. 하지만 물건의 새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보람 있게 느껴졌다. 소중하게 썼던 물건을 받아 가며 "잘 쓰겠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의 눈빛을 보면 더욱 그랬다. 무료 나눔을 받아 가는 분들은 고맙다며 오히려 나에게 과일, 음료수 등을 나눠주셨다.
중고거래는 나에게 활력소가 되었다. 그동안 육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지냈다. 아기를 돌보면서 체력적으로 힘들고 반복되는 생활에 지쳐있었다. 집안을 치우고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그것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 사람들과 소통을 하면서 에너지를 채우는 느낌이었다. 무더운 여름 아기 띠를 매고 아기와 함께 물건 주인을 만나러 갈 때 힘든 줄도 몰랐다.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집 정리해볼 것을 권한다. 육아를 하는 것이 힘들고 지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맞을 수 있다. 아기를 하루 종일 바라보고 있는 일상에서 정신적으로 쉴 틈이 생긴다. 가진 것을 되돌아보게 되고 나눔의 행복도 나눌 수 있다.
중고 물건을 받는 가게도 있다. 물건값을 연말정산 때 기부금으로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증한 물건이 깨끗하게 닦여 가게 진열대에 오른 것을 발견할 때 기쁨이란... 남몰래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다. 처음 기증한 물건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단, 물건을 직접 들고 가야 하는 수고로움은 있다. 하지만 환경을 보호하고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가게 문이 늦게까지 열려 있어서 아무 때나 들릴 수 있다는 것도 편리하다.
살아가는 동안 반복할 일 같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걸러내는 일 말이다.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누군가에게 전해져 도움이 된다면 정말 반가운 일이다. 물건을 치워서 집을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다. 물건값을 받으면 아기 간식거리도 살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소중하게 쓴 물건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기쁨이 컸다. 엄마가 되니 세상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곳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