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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화 Oct 23. 2020

엄마는 숨구멍이 필요하다

육아 스트레스 해소법

다람쥐 쳇바퀴 돌듯했다. 아기가 생후 4개월쯤 되니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 비슷했다. 하루는 아기 중심으로 지나갔다. 그러다 보면 내일이 왔다. 아기는 옹알거리고 있었지만 대화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남편은 병원 일이 바빠서 내 마음을 헤아려줄 여유가 없었다. 웃는 아기를 보면서도 눈물이 났다. 일하고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괜스레 화가 났다. 마음과 몸이 육아에 지치고 흔들리고 있었다. 육아는 끝이 없다는데... 벌써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다. 


답답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책을 읽고 일기를 썼다. 일기장에는 아기의 하루 일상을 적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엄마의 행복을 다룬 육아 서적을 들췄다.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소아과 전문의가 되기 위해 십 년을 달려왔는데 막상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육아였다. 남편은 승승장구하며 앞으로 전진하는데 나는 늪에 빠져 제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은 개구리가 멀리뛰기 위해 잠시 움츠리는 것을 내 상황에 비유했다. 하지만 위안이 되지 않았다. 시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면 어머님은 아기를 키우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알려주셨다. 가족들의 위로의 말은 나에게 위안이 되지 않았다. 


한 달 뒤 주말 진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기는 남편과 친정엄마에게 맡겼다. 진료실에 나오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하얀 가운을 입고 앉아 있으니 나 스스로 가 달라 보였다. 전공의 과정을 마친 뒤 약 3개월간의 공백기가 있어서 긴장하고 일했다. 처방한 약이 맞는지 꼼꼼히 검토하고 보호자에게 설명을 열심히 했다. 환자의 보호자와 소통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아기를 키우며 느끼고 배웠던 사실을 엄마들에게 잘 전달하려고 했다. 엄마들이 느끼는 육아의 어려움도 헤아려줬다. 사람들과 마음이 통하니 진료를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엄마 소아과 의사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 내가 예전보다 성장한 것 같았다. 비로소 육아 경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아기를 낳고 망가진 몸을 추스르는 것도 필요했다. 아기가 어릴 때는 아기가 자는 시간을 이용해 동영상을 틀어놓고 스트레칭이나 요가 동작을 따라 했다. 하지만 동작하는 중간에 아기가 깰 때가 많았다. 운동을 꾸준히 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친정엄마 찬스를 썼다. 일주일에 두 번씩 아기를 엄마에게 맡기고 필라테스를 했다. 무너진 체력을 회복하기까지 서너 달 걸렸던 것 같다. 운동을 하니 기분이 좋아지고 삶의 활력도 생겼다. 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체력이 좋아지는데 엄마도 운동을 해서 같이 따라가야 했다. 


내 생활은 여전히 아기 중심이다. 아이는 아직도 아빠가 있어도 "엄마엄마"라고 부르며 나를 쫄쫄 따라다닌다. 아기가 눈뜨는 시각에 맞춰서 진짜 바쁜 하루가 시작된다. 밤이 되어 아기가 눈을 감으면 그제야 남은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체력적으로 지치는 날은 육아에 대한 푸념도 늘어놓는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고는 육아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예전처럼 육아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덜한 것 같다. 육아의 귀중한 경험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육아는 분명 힘들다. 그래서 엄마는 숨구멍이 필요하다. 양쪽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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