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 중독 탈출법
아기는 자랄수록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혼자 노는 모습이 참 예쁘다고 생각할 때는 잠깐이었다. 이내 내 옷을 붙들고 놀아달라고 징징대기 일쑤였다. 하지만 아기와 놀고 있어도 노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어려웠다. 눈앞에 어질러지고 밀린 집안일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기의 시선을 한 곳에 고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었다. 텔레비전이었다. 아기가 그것을 보면 내 시야를 벗어나 움직이거나 다른 위험한 행동은 안 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나도 아기에게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을 보여주는 것을 반대했다. 심지어 아기가 백일이 안됐을 때는 불빛이 반짝거리는 장난감도 사주지 않았다. 어릴수록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것에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영상미디어에 과다하게 노출되면 '도파민'이라는 호르몬 분비 조절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전문가들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ADHD), 틱장애 등 질병들을 언급한다. 이외에도 지나친 영상미디어 노출은 아이의 시력발달, 의사소통, 사회성 발달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막상 육아를 해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영상미디어에게 그렇게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에게 텔레비전을 보여주는 것은 유일한 방법이었다.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아기의 안전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은 것 같았다. 생후 21개월 무렵부터였다. 다달이 집으로 배달되는 아이의 생활습관 교육이 담긴 영상물을 시청했다. 아기는 자연스럽게 영상물 앞에서 집중해서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는 그동안 집안일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아기는 스마트폰으로 동요 영상물이나 본인이 찍힌 사진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아직 글도 모르는 아기가 스마트폰을 쥐고 어른을 따라 손가락으로 사진을 넘겼다.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신기했다. 생후 23개월이 되자, 아기는 아이들의 율동 동영상을 보고 따라 했다. 노래를 틀어주면 동작을 외워 춤추는 것을 보고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생후 27개월, 텔레비전을 안방으로 옮기면서 우려했던 일이 생겼다. 할머니 집에서만 보던 텔레비전을 집에서도 자주 틀었다. 우는 아기를 달래주려 틀어놓은 텔레비전이 독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가 텔레비전에 빠져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으로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아기는 아침에 눈을 뜨면 "티브이~"라고 말하며 텔레비전을 켜달라고 말했다. 아이가 울고 떼써서 할 수 없이 보여줬다. "하나만 보고 끄는 거야."라고 약속을 해도 소용없었다. 텔레비전을 끄려고 하면 아이는 울고불고했다. 그야말로 '난리 블루스'였다. 이대로 두면 텔레비전 중독에 빠질 것 같았다. 내 책임이었다. 급한 마음에 무작정 텔레비전 리모컨을 숨겼다. 보채는 아기와 씨름을 했다. 정신없이 리모컨을 숨기느라 이후에도 그것이 어디로 갔는지 기억을 못 했다.
텔레비전 리모컨을 치우고 나니 예전 생활로 돌아왔다. 나 홀로 영상물 세계에 빠졌던 아기를 되찾아오는 노력을 했다. 아이에게 엄마와 함께하는 놀이의 재미를 찾아주려고 했다. 물감과 크레파스를 꺼내 스케치북 위에 그림을 그렸다. 아기가 좋아하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놀았다. 아기는 같이 놀자며 장난감을 가져왔다. 보고 싶은 그림책을 들고 와 읽어달라고 했다. 어린이집도 다니기 시작했다. 친구를 사귀고 선생님을 만나 규칙적으로 하루 일과를 보내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는 텔레비전을 쉽게 틀지 않는다. 특히 집안일을 할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아기에게 텔레비전을 보여주지 않는다. 할머니 집에 있을 때 아기가 좋아하는 영상물을 1~2시간 내외로 보여준다. 더 보고 싶다고 조를 때도 있지만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나와 남편은 아이와 놀 때 되도록이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보면 아기도 보여달라고 보채기 때문이다.
영상미디어는 필요악인 시대다. 이것을 어떻게 슬기롭게 사용하느냐를 고민해야 하는 것 같다. 엄마들에게 무조건 "아기에게 미디어 영상물을 보여주지 마세요!"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엄마도 숨 쉬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지치고 힘든 날은 아기에게 잠시 스마트폰을 쥐여주라는 강연을 들은 적도 있다. 어쨌든 육아와 가사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해선 안 되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배웠다.